반장, 저 빈자리는 누구 자리냐?
(+) 처음으로 희곡을 한 번 써봤습니다. 희곡이라 부를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가상의 인문계 여고의 가상의 학생을 그려봤습니다. 아름다운 학교를 그리는 것도 좋지만, 학교의 문제를 드러내어서 반성의 자료로 삼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조례시간, 교실. 몇 몇 아이들은 책상에 걸터앉아 있고, 몇 몇 아이들은 고함을 지르며 뛰어다닌다. 담임이 교실로 들어선다. 아이들은 하던 일을 계속한다.
담임: (목소리를 낮게 깔며,) 이 놈들아! 최소한 선생님이 오면 자리에 앉는 척이라도 좀 해라.
학생들: (그제야 자리로 천천히 돌아간다.)
담임: 선생 생활 10년에 너희 같은 놈들은 처음 본다. 사람에 대한 예의는 지켜라. 담임이 와도 무슨 개 보듯 닭 보듯 하니.
학생들: (아무 관심 없고, 고개 숙인 체 제 할 일을 한다.)
담임: 학교가 어수선하다. 3학년들은 수능 쳤다고 학교에 없고, 니들은 수학여행 기분이 아직 그대로고. 이제 마음잡고 공부해야지. 참 그리고 반장, 저 빈자리는 누구자리냐?
반장: (한참을 머뭇거리며) 소영이 자린데요.
담임: 아직 안 온 거냐?
반장: (빈자리를 한참을 지켜보며) 가방은 있는 것 같은데요…….
담임: (빈자리로 가서 가방을 보며) 어디 보자. 이거 어제 그냥 놔두고 간 거 아니냐? (빈자리 옆에 앉은 아이를 보며) 소영이 온 거야 안 온 거야?
옆자리 아이: 모르겠는데요.
담임: 옆에 앉은 친군데 그걸 몰라? 관심 좀 가져라 관심 좀.
옆자리 아이: …….
담임: 아무튼 반장, 소영이 보는 즉시 교무실로 오라고 해라. 주번은 칠판 좀 지우고. 어째 꼭 말해야 하니. 아무튼 즐거운 하루가 되도록 하여라. 이상.
교무실
소영: (방긋 웃으며) 선생님 저 아까 왔는데요.
담임: 조례 때는 어디 있었냐?
소영: 매점에 있었는데, 종소리를 못 들었어요. 죄송해요.
담임: 그래?
소영: 예…….
담임: 네가 문제가 아니고 네 귀가 문제였구나. 귀 좀 파고 다녀라, 짜샤.
마침 옆을 지나던 옆 반 담임이 말을 거든다.
옆 반 담임: 이 자식. 결국 걸렸구나.
소영: (인상이 확 구겨진다.)
담임: 무슨 말씀이신지?
옆 반 담임: 이 자식 이제 막 교실로 오던데요. 어제도 그랬고. 하여튼 자주 그래요.
담임: 그래요? 제가 전혀 몰랐네요. 고맙습니다.
옆 반 담임: (자기 자리로 돌아가며) 아이고 선생님, 올해는 복이 터지셨어요. 소영이에다가 그 못지않은 놈들이 그 반에 죄다 몰려있으니.
담임: 어찌 된 거냐?
소영: 죄송해요.
담임: 뭐가 문제지?
소영: 아침에 일어나지를 못하겠어요.
담임: 엄마가 안 깨워주셔?
소영: 엄마는 밤늦게까지 일하셔서 주무시느라 깨워주시지 못해요.
담임: 그럼 알람이라도 맞춰놓고 일어나야 할 거 아냐?
소영: 제가 알람 소리를 잘 못 들어서…….
담임: 그래 네 사정은 알겠는데, 그래도 매번 그렇게 거짓말해서야 쓰겠니?
소영: 죄송해요.
담임: 일단 오늘 1교시는 무단 지각으로 처리한다. 이전에 했던 건 넘어가지만,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있으면 무단 지각으로 처리하고 벌 청소 할 거야.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니, 너무 모질다고 욕하지는 마라. 선생님도 괴롭다. 가봐라. 수업 열심히 듣고. 농땡이 부리지 말고.
옆자리에 앉은 선생님이 이야기를 다 듣고 있다가 말을 건넨다.
옆자리 선생님: 저 자식 1학년 때부터 유명해요. 1년에 300일은 지각할 걸요. 그때마다 거짓말로 모면하고. 무슨 말을 해도 저 놈 못 고칠걸요. 그래도 성질 안내시고 잘하시던 걸요.
담임: 어쩌겠습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게 출석부에 끗는 것 밖에 더 있습니까? 싫은 소리 하면, 인상 쓰고 달려 들 게 뻔하고. 쥐어박을 수 있는 세상도 아니고. 그냥 제 평온한 마음을 위해서 조용조용히 말하는 거죠. 저도 내년엔 비담임 신청할까 봐요. 적어도 3년 담임하면 1년 정도는 마음 수양을 해야지 싶어요. 안 그러다간 병날 것 같다니까요.
교실
소영: (문을 쾅 닫으며) 에이 씨발. 옆 반 담임 때문에 걸렸어. 자기 반 관리도 안 되면서, 왜 남의 반에 참견하고 지랄이야.
친구: 재수 옴 붙었네. 그래 어떻게 됐는데?
소영: 욕은 안 들었는데, 출석부에 무단지각처리 하고, 앞으로 안 봐주겠데.
친구: 이제 어쩌니?
소영: 뭘 어쩌긴 어째, 며칠 저러다가 말겠지. 어쩔 거고? 자르지도 못할 건데. 짤려도 상관없고. 매점이나 가자.
친구: 종 칠 때 다 됐는데.
소영: 아, 그냥 가자. 뭐 어때.
소영이와 친구가 매점에 가고 조금 있다 교과담당 선생님이 들어온다.
교과선생님: 반장, 저 빈자리 두 개는 뭐냐.
반장: 잘 모르겠는데요.
교과선생님: 출석부 어디 있냐? 없으면 끄어야지.
소영이와 친구가 과자봉지를 들고 들어선다.
교과담당: 이 놈들아, 종 친지가 언젠데.
소영이: (시원하게) 죄송합니다.
교과담당: 그래 이젠 늦지 마라.
소영이: (자리에 앉으며) 옙!
수업 10분이 경과하고 소영이와 친구는 엎드려 잔다. 교과 담당 선생님은 흘깃 보고는 그냥 계속 수업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