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

아무도 말하지 않은 것을 말하는

빈배93 2013. 3. 18. 07:00

   서울의 모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밟을 때였다. 무슨 주제로 논문을 쓸까 고민하던 차에 한 선배가 해 주었던 말. "아무도 다루지 않았던 것을 쓰던가, 많은 사람이 다루었지만 말하지 않았던 것 혹은 못했던 것을 써야지." 책을 상당량 읽다보면, 그 분야가 무엇이든 다루는 대상이 지극히 제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책을 통해 인간의 역사를 복원하고자 하는 소망은 지극히 불완전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알랭 드 보통의『일의 슬픔과 기쁨』은 역사의 증언물으로서의 책의 한계를 넘어서려 한다. 송전탑을 따라서 여행한 기록, 회계 회사·물류 회사·창업 박람회…….  누가 또 그런 곳을 여행을 하고 기록을 남기려 했겠는가? 먼 미래에, 책을 통해 현대 사회를 재구성하려면, 알랭 드 보통의 책들이 단단히 한 몫을 하리라. 이와 비슷한 사례가 영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자면, 풀과 벌레같은 별볼일 없는 것들 - 적어도 조선후기 사회에서 교조화된 성리학에 갇혀버린 사대부들에게는 별볼일 없었던  - 을 두고 기록을 남기다 패사소품가로 지목을 받아 고초를 겪었던 청장관 이덕무나, 평생을 자갈치 시장을 다니며 더럽고 추한 것만 찍는다고 경찰서를 드나들었던 사진 작가 최민식 같은 분.

 

   문화적으로든 생리적으로든 다양성이 확보되고, 그 다양성 속에서 발생하는 잡종(?)이야 말로 건강하고 아름답다. 글도 마찬가지고, 글로 이루어진 책도 마찬가지다. 뭐 뜯어 먹을 게 있다고 한 가지 소재나 주제에 개 때처럼 달려드랴? 눈길 한 번 스윽 으슥한 곳으로 돌리면, 아무도 손대지 않았던 글감들이 저를 이야기해 달라고 아우성치고 있는데. 그 놈들을 데리고 와서 지지고 볶으면, 빈약한 역사적 증언물로서의 글과 책에 또 다른 자양이 되리라.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다루지 않은 것을 찾아내어서 쓰는 일. 이는 고만고만한 글솜씨로 이책 저책을 기웃거린 끝에 배설한 악서 - 양서를 읽을 시간을 앗아간다는 측면에서, 또 역사적 증언으로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측면에서 - 를 막을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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