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한국 사회와 그 적들] 속을 떠돌다

빈배93 2013. 3. 19. 07:00

   『한국 사회와 그 적들』이 도착했다. 어라? 어디서 많이 본 제목인데……. 서문을 읽다보니 금세 답이 나온다. 카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의 페러디였구나. 이나미? 뭐하는 사람이지? 처음 보는데. 책 날개를 본다. 우와 화려하다. 서울대 의학박사에 미국에서 또 학위 취득. 서울대 외래교수, 한국 융 연구소 교수, 이나미 라이프 코칭 대표. 저서 엄청 많음. 번역서도 꽤 됨. 논문도 당연히 많음. 몇 살이지? 검색을 해본다. 61년 생. 우리 나이로 쉰 셋. 방송에도 활발하게 출현. 소설가로 등단.

 

   뒤 표지를 읽는다.

 

   "이 책은 이처럼 개인의 삶을 괴롭히는 한국 사회의 콤플렉스들을 들추어 정면으로 바라보게 한다. 더 나아가 콤플렉스를 억압하거나 피하지 말고 제대로 이해하고 마주할 때 진짜 내 삶, 나만의 행복을 찾게 될 것이며, 그때 비로서 우리를 괴롭히는 콤플렉스는 적이 아닌 내 편이 되어 준다고 이야기한다."

 

   그렇지. 대상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대상에 변화가 일어나는 법이지.

 

   "콤플렉스는 우리를 괴롭히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성장시킨다. 한국인에게 여러 가지 콤플렉스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오∼, 이 말도 맞네. 본문으로 들어가면 어떤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질까? 그것도 무려 12가지의 콤플렉스에 대한 내용이니.

 

  첫번째 콤플렉스, 물질. 평이하다. 두번째, 콤플렉스, 허식. 다 맞는 말인건 같은데 평이하다. 세번째, 교육. 네번째 집단. 일단 읽히기는 잘 읽히는 데, 새롭거나 인상적인 구절은 찾을 수 없다. 다섯번째, 불신. 드디어 하나 찾았다.

 

   "감정이 실리지 않는 사건들은 아예 등록되지 않는다. 휴대 전화, 열쇠, 지갑 등을 어디에 놓았는지 기억 못하는 이유다."(122p)

 

   그렇지. 드디어 한 구절 찾았다. 이걸 잘 이용한다면 우리 학생들 영어 단어 외우고 수학 공식 외우는 데,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떻게? 항상 문제는 방법에 있지. 휴대 전화, 열쇠, 지갑을 어디에 놓았는지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감정을 실은 수는 없는 노릇이고. 아버지 말씀마나 항상 제자리에 물건을 두는 습관을 기르는게 더 낫지.

 

   여섯번째, 세대. 일곱번째, 분노. 여덟번째, 폭력. 아홉번째, 고독. 열번째, 가족. 열한 번째, 중독. 열두 번째, 약한 자아. 그리고 몇몇 해결책들. 저자 이나미는 융 심리학을 기반으로 동양과 서양의 고전과 철학을 넘나들며 , 한국인의 심리라는 마당을 종횡무진 누빈다. 그러나 한 권 책에 담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담론들이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옳은 내용이지만, '통찰'이라고 할 만 한 것은 발견할 수가 없다. 어느 신문의 사회면에 실린 흉악사건에 대한 범죄심리학자의 코멘트. 책 날개에 쓰여지 저자의 화려한 이력과 그 이력의 무능함. 그래 이 책은 그런 느낌과 닿아 있다.

 

   전에도 비슷한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케임브리지대 노교수인 엘런 맥필레인이 쓴 『손녀 딸 릴리에게 주는 편지』(랜덤하우스, 2008.). 당시에 무척 좋았었는데. 그때 뭐라고 서평을 썼더라? 블로그를 뒤져본다. 찾았다. 

 

존재/사랑과 결혼//폭력/가족/학교와 조직/우정//즐거움/·시간·언어/민주주의/주술/불평등/테러/교육/정신/출산/전쟁/노동/디지털 시대/지식/굶주림///개인/놀이/시민사회/인류의 미래/추천해주고 싶은 책/

 

   위와 같은 다양한 주제를 통해 저자는 '우리가 왜 지금 여기에서 이렇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을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이 다양한 주제를 통합하는 과정을 거치기를 손녀딸에게 요구하고 있다. 인류학을 전공한 저자의 30년 공력이 고스란히 들어간 이 책은, 손녀딸에게 주는 편지인 만큼 난해하지 않고 친절하다. 초록을 해보니 무려 11페이지였다. 그만큼 생각해볼 이야기들이 풍부하기도 하다.   

 

   그래. 『한국 사회와 그 적들』도 세상 모든 것을 이야기하더라도 충분히 괜찮은 책이 될 수는 있었다. 내공만 좀 더, 아니 아주 많이 보강이 된다면. 하지만 너무 성급했다. 이력의 화려함과 내공의 깊이가 필연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닌가 보다. 깊은 맛이 우러나려면 온축의 기간이 - 그것도 아주 긴 기간이 - 필요하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로 한 권, 『행복의 건축』으로 또 한 권……. 그런 식으로 여러 주제를 오가며 밀도 있는 이야기와 놀라운 통찰을 보여주었다. 까칠하고 집요한 알랭 드 보통의 글쓰기에 흠뻑 빠진, 우리에게는 왜 이런 작가가 없냐는 불만 아닌 불만을 안고 있는, 이 시점에 만난『한국 사회와 그 적들』.  너 참 안됐다.

 

   『한국 사회와 그 적들』은 한국인의 컴플렉스를 쉽게 잘 정리했다. 그래서 심리학에 관심 있는 비전공자나, 독서에 흥미를 붙여가야할 청소년들에게 좋은 책일 수도 있다. 다만 심리학에 대해 꽤나 안다고 착각하는, 또 수 천 권 정도의 책을 읽었다고 잘난 체 하는, 이상한 필자의 붓에 걸려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박한 평을 받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글은 도서출판 추수밭으로부터 제공받은 책에 대한 서평입니다>  

 


한국 사회와 그 적들

저자
이나미 지음
출판사
추수밭 | 2013-03-2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이 책은 물질, 교육, 가족, 집단 등 한국 사회에 깊게 자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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