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만한 존재의 유치함
나는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면 모든 사고가 정지되면서, 마음에서 울화가 부글부글 끓는다. 그러면 한없이 유치해진다. 아무리 근사하게 말해도 유치하다. 아무리 근엄하게 있어도 유치하다. 그걸 글로 쓰고 있는 지금의 행위도 본질적으로 유치하다. 남들은 잘 모르겠다. 내겐 남들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저 나를 미루어서 짐작할 뿐. 다른 이들도 유치하긴 마찬가지여야 한다. 다른 이들도 그렇다고 미루어서 짐작해야만, 덜 민망할 것 같다고 생각을 하고 있으니, 나의 유치함은 어쩔 도리가 없다. 40년간 읽어온 책들은 다 무엇이었단 말인가? 선생이라는 사회적 지위와 글 좀 쓴다는 문화적 자부심과 두 아이의 아버지라는 가부장적 권위는 다 무엇이란 말인가? 한 줌 새털보다 가벼운 내 정신의 유치함이여!(그러고 보니 이 표현도 유치하다.)
이 넓은 세상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이 거의 같은 숫자로 몇 명쯤 있다. 나는 왜 그들을 좋아하는가? 나는 왜 그들을 미워하는가? 나에게 잘해 주면 좋아하고, 나에게 잘 해 주지 않으면 미워할 뿐이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데 붙여놓은 온갖 이유들은 그 단순한 이유를 감추기 위한 장치일 뿐이었다. 나는 나의 이런 유치함이 허망하다. 마음 한 쪽에서 ‘사람은 누구나 다 유치한 것이라’고, 그래서 ‘유치함은 인간 본연의 것이라’고 말을 하지만, 나의 유치함은 분명하기만 하다.
내가 유치하다는 인식이 나의 유치함을 줄여줄 수 있을까? 그것이 오히려 유치함을 더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가진 것 중에 그나마 덜 유치한 것은 무엇일까? 밥을 먹기 위해 돈을 버는 행위? 밥벌이의 숭고함! 김훈의 말을 빌려와도 뭔가 유치한건 여전하다. 4살 먹은 딸아이보다 나는 얼마나 덜 유치한가? 6살 먹은 아들놈이 나보다 덜 유치한 건 아닐까? 모르겠다. 아니, 모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