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왜 고전을 읽을 수 밖에 없는가?

빈배93 2013. 4. 1. 12:11

   아무리 정확한 시계도 십만 년에 0.1초의 오차가 생기고, 고장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 것처럼 이 세상에는 완전히 맞는 말도 없고 완전히 틀린 말도 없다. 객관적 실체[fact]라고 하는 것도 알고 보면 주관적 감정으로 선택되거나 뒤틀려진 것이 대부분 아니던가? 그래서 세상에 횡행하는 어떤 말들은 옳다 그르다로 분류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로 옳고 어느 정도로 그르다는 기준으로 분류되어야 마땅하다.

 

   혹자는 목적 없는 독서는 산책과 같아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별로 마음에 안 드는 말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옳다의 비중보다 그르다의 비중이 높은 말이라 생각한다. 과거에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단순하다. 내 평생의 독서가 아무런 목적 없는 - 돌이켜보면 여태껏 책 읽는 그 자체가 목적이었고, 그로 인해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목적이었으니, 남들이 말하는 목적이라고 하기에는 목적스럽지 않아서 목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 독서였다. 산책 운운하는 저 말을 옳다고 여기는 순간, 평생을 읽어온 행위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산책 운운하는 말에 대한 경험적 반박거리를 찾지도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젠 경험적 반박거리가 생겼다.

 

   철 들기 전부터 1년에 최소 50권 이상의 책을 읽어왔다. 내키면 하루에 두세 권을 읽기도 했지만, 1달 내내 읽지 않은 경우도 잦았으니, '본격적'이라는 수식어를 달기에는 부족했다. 본격적인 독서 - 매일 조금씩이라도 읽기를 멈추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최소 사흘에 1권은 꾸준히 읽기 시작했다는 측면에서 - 를 시작한 지 3년이 되었다. 30여 년간의 들쑥날쑥한 독서로 얻은 것보다, 지난 3년간의 본격적 독서로 얻은 것이 더 많다. - 물론 그것에 30여 년간의 독서가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지난 3년간 읽은 책은 목록으로 꼼꼼히 작성되어 있다. 이는 지난 독서 편력을 살펴보기에 대단히 유용한 자료다. 뒤늦은 후회지만 왜 진작 목록을 작성하지 않았던가 싶다. 아무튼……. 본격적 독서의 초창기였던 2011년에는 주로 자기개발서를 읽었다. 2012년 들어서 자기개발서의 비중이 점차 낮아지고, 그 빈자리에 인문학·심리학·사회학·건축학 서적이 들어찼다. 2013년 들어와서는 자기개발서의 비중은 zero에 가까워지고, 인문학·심리학·사회학·건축학 분야의 책이 50%를 육박하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그 나머지가 고전으로 채워졌다는 데 있다. 왜 하필 고전인가?

 

   지난 3년간 소위 베스트셀러라는 책 - 특히나 자기개발서 - 을 빠짐없이 읽어왔다. 자꾸만 중복되는 인용과 얕은 해석, 사회구조적인 고려는 빼먹고 모든 문제의 해결을 개인의 것으로 돌려버리는 무책임함, 그리고 상업적인 고려가 뻔히 드러나 보이는 전시까지, 베스트셀러의 총체적인 천박함이 자꾸만 눈에 들어서, 이제는 그것을 기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책을 읽지 않을 수도 없고, 아무 책이나 읽을 수도 없고, 재미없는 책을 읽을 생각도 전혀 없고. 결국 선택은 영원한 베스트셀러, 고전古典일 뿐이었다. 

 

   지난 주말에 민음사에서 출판한 톨스토이의 『부활』을 처음으로 읽었다. 역시나 톨스토이였다. 이번주에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과 오 헨리의 단편을 읽으려고 책을 빌려놓았다. 이름만 수없이 들었던 명작 중에 명작들. 그 중에 내가 읽은 것은 거의 없다.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개인적으로 재미없게 읽을 책들도 있겠지만, 최근의 경험으로 보건데 고전만큼 깊은 재미를 주는 책은 잘 없다. 그러니 고전이 된 것이고 고전으로 불리는 것이겠지만. 

 

   고전의 필요성에 대한 자각은 개인적인 독서 체험의 축적에서 나오는 것이다. 고전의 필요성을 아무리 역설해도, 사람들은 들을 때 뿐이다. 나의 목적 없는 독서, 아니 재미있어 보이는 아무 책이나 잡히는대로 읽는 독서, 유희로서의 독서의 끝은, 결국 고전이었다. 유치하지 않고 재미있고 구하기 쉽고 선택의 고통이 거의 없는 고전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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