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

[본격 배드민턴 소설/배드민턴 탈출기] 제3화 스포츠의 세계로 처음 발을 들이다

빈배93 2013. 5. 24. 07:00

   주인공 안 선생의 이름을 바꿨습니다. 뭔가 좀 순박하면서 어리버리하면서도 운동을 좋아할 것 같은 이름을 고민했는데, 그 결과 배민구로 결정했습니다. 배(裵) 씨라는 성은 배드민턴의 배 자에서 따왔고, 민(民) 자는 순박하고 어리버리한 느낌 때문에 따왔으며, 구(球) 자는 말그대로 공이라는 뜻이니, 운동과 바로 연관되어서 그렇게 붙였습니다. 조카 이름 몇 번 지어본 적이 있는데, 그만큼이나 힘들게 지은 이름입니다. 긴 시간 고민해도 해결되지 않던 이름이, 갑작스레 떠올랐습니다. 아마도 임계점을 넘어섰기 때문인 것 같아요.    

 

3

 

   국민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2학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민구가 운동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다고는 하지만, 이미 말했다시피, 변변한 놀이감이 없었던 어린 민구가 할 수 있는 놀이라고는 역시 운동 밖에 없었다. 학교를 파하고 집에 돌아오면 대략 오후 3시였는데, 민구가 비록 책을 좋아하였다고는 하나, 한 번 읽으면 기껏해야 30분 정도였고, 한 번 그러고 나면 그날에는 다시 책을 잡지 않았으니, 그때부터 자기 전까지 할 수 있는 놀이는, 그저 뛰고 던지고 차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 놀이라는 것이, 그저 몸을 끊임없이 놀리는 것에 불과했을 뿐, 축구나 야구나 농구나 테니스나 수영이나 육상 같은 본격적인 스포츠는 못 되었다. 그런 민구가 최초로 한 본격적인 스포츠는 농구였다. 민구가 본격적인 운동의 길로 접어들게 된 계기는 의외로 단순했다.

 

   80년대 중반 인기의 절정을 구가하던 삼성전자와 현대전자의 대결,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충희와 김현준의 대결 때문이었다. 두 슈퍼스타의 손을 떠난 공은 여지없이 링으로 빨려 들어갔다. 규칙도 작전도 모르는 민구에 눈에도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미술실 석고상에서나 볼 듯한 우아한 폼으로 연신 골을 넣어대는 이충희와, 괴상하다 못해 해괴망측한 폼으로 아무렇게나 막 던져도 다 들어가는 김현준의 대비는 기가 막힌 것이었다. 이충희가 바로크적이었다면, 김현준은 포스트모던적이랄만 했는데, 예술세계에서는 결코 일어나기 힘든, 전혀 다른 두 사조의 아름답고도 환상적인 화해와 조화를, 이충희와 김현준이 한 코트에서 버무려내었던 것이었다. 당시 언론에서는 그 두 팀을 두고 「전자 라이벌」이라고 불렀는데, 어린 민구가 보기에는 그 표현이 주는 느낌도, 그러니까 전자라는 단어가 주는 아톰적이고 마징가적인 느낌도, 기가 막힌 것이 아닐 수 없었다.

 

   경기 중계가 끝나면, 민구는 당장 공을 들고, 그러니까 농구공은 아니고 축구공을 들고, 학교 운동장을 찾았다. 운동장을 찾는 것은 민구뿐만이 아니었다. 전자 라이벌간의 경기를 본 애란 애들은 다 운동장으로 모여들었다. 골대 하나에 네댓 개의 축구공이 날아다녔고, 그러니까 민구 동네에는 농구공을 살만큼 잘 사는 집이 없었기 때문에 아쉬운 대로 축구공을 날아다니게 한 것이었는데, 아무튼 그 아래로는 열 명 남짓한 까까머리들이 고개를 쳐들고 있다가, 「앗싸!」라든가, 「우씨!」같은 소리를 내뱉거나,「퍽」이나 「탱」같은 소리와 함께 코피를 쏟아내기도 하였다. 민구가 특별했던 것은 그 멋진 농구를, 그들 중에 유일하게 10년도 넘게, 거의 매일을 즐겼다는 데 있다. 이를 통해 민구는 운동회 참사로 잃었던 운동에 대한 자신감을 완전히 회복하게 되었다. (내일 계속)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