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

말 많은 사람이 두려워? 철 났네!

빈배93 2013. 6. 29. 06:30

   중고등학교 때, 참 두려운 애가 있었어. 일언이폐지하자면, 싸움 잘하는 놈! 성질이 더럽든 온순하든 이상하게 그놈들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나(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늘 키만 삐쭉하게 컸지, 담력도 없었고, 힘도 없었고, 깡도 없었어.)를 발견하게 되더라고. 싸움 잘하는 놈에 대한 두려움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어. 대학생이 되고부터는 말끔히 사라졌으니까. 그렇다고 두려운 대상이 사라진 건 아니야. 단지 두려운 대상이 바뀌었을 뿐이지. 대학 때 제일 두려웠던 건, 갑갑할 정도로 원칙을 내세웠던 몇몇 선배들이야. 숨이 막히다 못해, 아주 실신하고 싶을 정도였지.(지금도 그 선배들 생각하면 갑자기 호흡에 지장이 있어.) 그런데 대학이라는 것이 참 좋더라고. 같은 장소에 안 있으면 그뿐이었으니까. 그래서 갑갑한 원칙주의자가 있는 곳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지. 가끔 어쩔 수 없이 같은 자리에 있기도 했는데, 그거야 뭐 가끔이었으니까.

 

   시간이 흘러흘러 중년이라는 소리를 간혹 듣게 되었어. 중년이 되고 보니(흰머리를 새치라고 우기기에는 흰머리가 너무 많아진 내가, 「나는 중년이 아니다.」라고 말하기에는 민망하기도 하지만, 하여튼 중년이라는 말이 지금도 많이 어색하긴 해.) 또 두려운 대상이 바뀌더라고. 학교에 있다보니, 그것도 사립학교에 있다보니, 이제는 제일 두려운 것이 말[言]이야. 한 번 난 말은 잠시 잊혀지는 듯하다가도 꼬리표처럼 계속 따라다닌단 말이지. 공립학교라면 이동이라도 하지, 사립학교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30년을 근무해야 하는데, 그 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몇 km 쭈욱 늘어진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단 말이지. 그래서 내가 제일 두려운 사람이 말 많은 사람이야. 남의 욕하고 다니는 사람뿐만 아니라, 남의 칭찬을 즐겨하는 사람까지 포함해서. 왜 그런고 하니 남의 칭찬을 즐겨하는 사람이라는 게 본질적으로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잖아. 나랑 관계가 조금만 나빠지면 험담도 그만큼 잘하게 될 거라는 건, 그다지 깊이 고민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잖아.  

 

   나를 가만히 보면, 나도 참 말하기를 좋아해. 그런 내가 나도 무서워. 혓바닥 놀리지 않으려고 무지 노력하는데, 그러면 뭘해. 이렇게 손가락 놀리며 글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걸. 아무튼 매일 아침 매일 밤 다짐을 해. <입 닥치고 살자.>고 말이야. 말이 인간을 인간답게 했다고는 하지만, 말이 인간을 짐승만도 못하게 한 건 또 얼마나 많아. 아 무서워. 이 말 많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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