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

밀대 걸레의 하소연

빈배93 2013. 7. 17. 07:50

 

   내 너희를 위해 이 한 몸 더러워지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기로 했다. 고맙다는 말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내 머리를 깨끗하게 감기고 말려만 주면 좋겠다. 물에 젖은 더러운 머리로 컴컴한 청소용구함에 쳐박혀 있자니, 내 비록 무정한 청소 도구라지만 찜찜하고 괴롭기 그지 없다.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머리로 바닥을 닦으면 너희 교실에도 나의 냄새가 가득해지는데, 그것은 제대로 된 나의 역할이 아니다. 

 

   나는 내 몸이 더러워지고 눅눅해져서 썩어가는 것보다, 맡은 바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 더 괴롭다. 세상을 정화하는 나의 임무를 온전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깨끗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내 스스로를 깨끗하게 할 능력이 없어서 너희에게 전적으로 기댈 수 밖에 없는데, 그 누구도 나에게 따뜻한 손길은 내미는 이가 없는 내 현실이 슬프고 슬프다. 그것이 우연히도 이 학교에 떨어진 나의 비애다. 

 

   더러운 머리로 바닥을 닦고 컴컴한 청소용구함으로 유폐되었다가 하룻밤을 자고 나면, 너희들은 다시 나를 찾아내어 발로 대충 씻기고 다시 바닥을 닦는다. 그러다 보면 내 머리카락의 반은 썩어서 끊겨 나가고 반은 밟혀저 뽑혀 나간다. 한 올 한 올 빠져나가는 머리카락. 그리 길지 않은 세월에 용도 폐기를 당하는 것이 나의 운명이라지만, 하룻밤만이라도 깨끗하게 씻기우고 잘 말려져서 잠들고 싶다. 가뿐한 기분으로 일어나서 너희들이 온종일 머무르는 그곳을 반짝반짝하게 닦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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