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전공연수기] 강의 한 번 들어보지 뭐
@ 금강 자전거길(2013.09.25.)
다툼이 많은 세상입니다. 세상 다툼의 대부분은 서로를 너무 모르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알면 이해하거나 피할 수 있고, 설사 다툰다해도 후회가 없지요. 어떻게 해야 서로를 알 수 있을까요? 우리는 무엇이 되고서야 무엇을 조금이나마 알게 됩니다. 어떻게 무엇이 될까요? 시를 쓰면 됩니다. 시란 게 쓰는 이가 무엇이 됨으로써 써지는 것이거든요. 다툼을 줄이기 위해 시인은 못 되더라도 시를 한 번 써보시는 건 어떨까요?
@ 부산역(2013.09.30.)
강의라고는 안 듣고 딴 책을 봅니다만 책이 눈에 들어오질 않습니다. 읽는 양이라고 해봐야 겨우 일주일에 한 권 꼴입니다. 적은 인원이 듣는 수업이라 눈치도 보이고 동시에 곧 닥쳐올 중간고사에서 창피를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없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시간이 쏜살처럼 흐르는 것도 아닙니다. 이래서는 않되겠다 싶습니다. 과거를 회상해보면 마음 편하면서 시간 잘갔던 강의는 강의 그 자체에 몰두했던 강의였던 것 같습니다. 한 달 간의 삽질 끝에 이런 당연한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강의 시간을 가장 빨리 흐르게 하는 것은 강의에 몰두하는 것이다." 이제 강의 한 번 들어볼까 싶습니다. 물론 언제나 꼭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요.
@ 온천천, 부산(2013.09.17.)
예전에는 '시詩'라는 게 그냥 말장난인 줄로만 알았어요. 그래서 제대로 읽은 시집 한 편이 없었어요. 한 3년 죽자고 글을 써댔습니다. 물론 시詩 말고 산문을요. 그런데, 할 말도 없으면서 말만 질질 늘이고 있다는 생각, 안 해도 될 말을 굳이 하고 있다는 생각, 내가 써놓고도 내가 낯 간지럽다는 느낌…… 그런 생각과 느낌이 마구 일어나더군요. 그래서 그런 표현들을 몽땅 덜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다 덜어내고 보니 산문이었던 글이 시詩 비슷한 것이 되어 있더군요. 이제는 '시詩'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가장 경제적이고 깨끗한 글이 시詩라는 걸로. 제가 제가 좋아하는 도종환 시인의 시가 하나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시의 일부분입니다.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그 다음 구절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아무튼 제일 좋아하는 시입니다. "초록은 연두가 얼마나 예쁠까?" 초록과 연두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한 은유로 읽히는데요, 이 구절을 읊조릴 때마다, 주말에 올 아비를 기다리는 두 아이들의 맑은 얼굴이 떠올라, 빙긋이 미소짓게 됩니다. 이런게 진짜 좋은 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