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전공

동짓달 기나긴 밤 뭐하지?

빈배93 2013. 12. 10. 22:55

1

 

   "내일 수업은 11시에 시작됩니다." 동짓달 긴 밤이 갑자기 환하고 따뜻하고 느긋하다. 뭐 하지? 누구한테 전화해볼까? 하나 하나 떠올려봐도 하나 하나 함께 못 할 사연이 있을 것 같다. 홀로 방을 나서서 차가운 밤거리를 헤맨다. 맥주를 마실까? 소주를 마실까? 혼자라 어디든 갈 수 있지만, 혼자라 어디도 선뜻 들지 못 한다. 장고 끝에 맥주 한 잔 마시고 들어와 잔다. 전화 소리에 깨고 보니 아침이다. 못다 쓴 강경여행기 마저 쓰고, 한 해 동안 찍은 사진을 정리하다보니 벌써 11시가 다 되었다. 허겁지겁 강의실로 달려간다. 맨날 이렇다. 넉넉했던 시간은 덧없이 흘러가고, 남는 것은 그마저도 곧 스러지고 말 아쉬움.

 

 

2

 

   ≪싯다르타≫도 좋았고, ≪수레바퀴 아래서≫도 좋았다. 때문에 헤세가 좋았고, 그의 책이라면 뭐라도 좋았다.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을 집어들었다. 도무지 재미가 없다. 100페이지 정도 밖에 안 되니까, 그래도 헤세니까, 다 읽고 나서야 뒤늦게 좋다고 느낄 지도 모르니까, 끝까지 읽기로 한다. 다 읽었다. 뭐지? 아무 것도 없다. 헤세가 40이 넘어서 회화를 배웠고, 몇 년만에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다는 정보 외에는 남는 것이 없다. 해설을 읽는다. 이 소설을 씀으로서 극도의 절망을 극복 승화했다고, 클링조어는 헤세의 투영이라고, 하는데 감흥이 없기는 매일반. 미련없이 내려놓고 다른 책을 집어든다. 또 다른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밀란 쿤데라의 처녀작 ≪농담≫을. 어라,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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