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잡담] 가망 없다
빈배93
2015. 3. 2. 15:56
@ 경주, 밀레니엄파크(2014.04.04.)
가망 없다
- 무슨 부서에 가고 싶어요?
- 학생과에 가고 싶습니다.
아는 게 학생과 뿐이었다. 어쩌면 선생이 될 지도 몰랐던 나의 답변은 그것 밖에 없었다. 출근하라는 전화가 왔다. 희망대로 학생과에 뿌리를 내렸다. 5년이 갔다. 내 자리는 여전히 학생과였다. 10년이 갔다. 강산이야 변하건 말건 학생과의 내 자리는 굳건하였다.
내 생활 지도라는 게 열에 아홉은 협박이요 나머지 하나는 구라였다. 거울에 비친 내 이마에는 어느새 내 천[川] 자가 깊이 파였다. 학생과를 벗어나려 몸부림 쳤다. 나 좀 이제 놓아달란 말이야!
- 올 해가 마지막인데 한 해만 더 도와주면 안 되겠나?
- 처음하는 부장인데 기획이 어딜 간단 말이오?
주저앉았다. 부르는 데도 없었다. 갈 데도 없었다. 전교생 줄을 세우며 호령하는 것은 늘 나의 몫이었다. 교칙이 어떻고 징계가 어떻다며 고함지르는 것도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내 나이 마흔 둘. 이제는 내가 떠나려는 이를 붙잡아야 한다. 새벽 댓바람에 교문에 나가 누군가를 붙잡아야 한다. 내 천[川] 자 지우기는 가망 없는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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