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황희지관(黃喜之寬 )
빈배93
2011. 1. 21. 12:43
10. 黃喜之寬
『筆苑雜記』
Ⅰ. 黃翼成公喜는 度量寬洪하고 有大臣之體라. 居相位三十年이요 享年九十이라.
Ⅰ. 익성공翼成公 황희黃喜는 도량이 넓고 대신의 풍모를 가지고 있었다. 재상자리에 30년간 있었으며 향년 90세였다.
Ⅱ. 論決國事에 務從寬大라. 平居淡如하여 雖兒孫僮僕이 羅列左右하여 啼號戱噱라도 略不呵禁이라. 或有挽鬍批頰者라도 亦從其所爲라.
Ⅱ. 국사國事를 논의하여 결정함에 관대하려고 힘썼다. 평소에 집안에서는 담담하여 비록 어린 아이와 동복들이 좌우에 늘어서서 울고 소리치고 까불고 시끄럽게 웃어도 전혀 꾸짖거나 금하지 않았다. 혹 수염을 당기고 빰을 치는 아이가 있어도 또한 하는데로 놓아두었다.
Ⅲ. 嘗引僚佐議事한대 方濡筆書牘에 有童奴溺其上이라. 公無怒色이요 但以手拭之而已하니 其德量如此라.
Ⅲ. 일찍이 속관을 불러 국사를 논의하였는데, 막 붓을 적셔서 편지를 쓰려하는데 종의 아이가 그 위에다 오줌을 쌌다. 공은 노한 기색이 없이 단지 손으로 닦을 따름이었으니 그 덕량德量이 이와 같았다.
Ⅳ. 嘗謫在南原七年한대 閉門端坐하여 不接賓客하고 手執韻書一帙하여 凝神注目而已라. 後雖年高이나 於字書音義偏傍點畵에 百不一失이라.
Ⅳ. 일찍이 남원에 7년간 귀양을 갔는데 문을 닫고 단정히 앉아서 손님을 만나지 않고 손수 운서韻書 한 질을 잡고서 정신을 모으고 주목할 따름이었다. 훗날 고령에도 자서字書의 음의音義․편방偏旁․점획點畫에 있어서 백에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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