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한 하늘같은 선배교사의 전화를 받고
2000년 7월 낙향하다
나는 지방국립대 한문학과를 다니며 청운의 꿈을 꾸었다.
그리고 바란대로 남들이 말하는 서울의 명문대 대학원으로 진학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이유로 낙향을 했다.
공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할 일 없이 모교를 배회하던 중,
그런 한심한 인생을 본 노교수님이 부르셔서 말씀하셨다.
"안군아, ○○여고에서 사람 구한다는데, 한 번 가볼래?"
여고라길래 솔깃했다.
그래서 '그냥' 가보겠다고 말씀드렸다.
그것이 사립여고 교사로서의 첫 발이었다.
2000년 8월 사립여고로 면접을 가다 면접을 보러갔는데 여자 네 명에, 남자 한 놈(물론 그 한 놈이 나였다.)이었다. 그리고 그 여자 네 명이 모두 같은 과 선배거나 후배였다. 지필고사를 보고 면접을 하게 되었다. 면접관이 나에게 물었다. "근무하게 되면 무슨 부서에서 근무하고 싶습니까?" 나도 고등학교를 나왔건만 무슨 부서가 있는지는 전혀 몰랐다. 생각나는 것이라곤 '학생과' 밖에 없었다. 그래서 "학생과"에 근무하고 싶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급조한 이유들을 둘러대었다. 2000년 8월 사립여고 교사가 되다 면접을 다녀오고 나서 선배들이 "니가 된다"는 말을 했다. 내심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는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행정실에서 전화가 왔다. "출근하세요." 2000년 9월 생활지도부에 배치되다 희망대로 학생과에 배치되었다. 알고보니 '학생과'라는 명칭은 오래전에 '생활지도부'로 바뀌어 있었다. 학생과 배치는 내 희망대로 된 것은 아니었다. 이전에 근무하던 선생님의 빈자리가 학생과였다. 그래서 생활지도부 교내계라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 뒤로 한 번도 생활지도부를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올해로 12년째 생활지도부에서만 업무를 하고 있다.(이런 경우는 나 이외에 들어본 적이 없다.) 당연히 교내계, 교외계, 상벌계, 기획까지 생활지도부에서 안해 본 업무가 없다. 10년을 보살펴주신 부장선생님 교사 생활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한 분이 있다. 그 분은 면접 때부터 못난 나를 눈여겨 보시고 자상하게 대해주셨다.(못난 후배가 그걸 성가시게 느끼기도 했었다.) 첫 발령 때부터 교사로서 자리잡을 때까지 10년을 가르쳐 주셨다. 하루도 빠짐없이 칭찬을 해주시고, 심지어 자랑도 해주셨다. 다른 부서로 가기를 희망해도, 절대 보내주시지 않으셨다.(못난 후배는 당시엔 그게 불만이었고, 그래서 피하기도 했었다.) "불가근不可近, 불가원不可遠." 여고 교사로서 학생과 너무 가까워서도 너무 멀어서도 안된다는 가르침은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지금은 정년퇴직을 하시고 경기도에서 자제분과 함께 살고 계신다. 2011년 4월 9일 이상한 댓글이 달리다 백구라는 말을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울컥 울컥 울 것만 같구나"는 글을 읽으며 뭔가 이상했다. "소식 알켜 주샴"에서 연령이 헷갈렸다. 댓글의 내용을 여러 번 읽어봐도 누군지 알 수 없어 저렇게 답글을 달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잊어버렸다. 2011년 4월 10일 한 통의 전화를 받다 혼자 아파트 단지에서 산책을 하다가 화단에 핀 진달래를 찍고 있었다. 전화가 울렸고,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6001. 아 ! 부장선생님. "안선생, 학교 홈페이지 들어갔다가 '빈배의 행복한 세상'을 알게 되었어. 멋지던데." "안선생이 올린 설악산 수학여행 사진하고 이야기 보고 있으니 울컥울컥 하더라구." "정년 퇴임하고 경기도에 있으면서도 매일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학교소식을 듣네." "백구야가 내 별명이야."(부장님의 낚시 모임이 백구회였던게 이제야 기억난다.) "박선생(우리 집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은 휴직 중이가? 언제 복직하노?" "둘째가 딸이라고? 잘 되었네." "부모님은 건강하시고? 가족들 건강한 게 제일이라."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아쉽게 전화를 끊으셨다. 부장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기댈 유일한 선생님이셨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이제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저 혼자 해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새삼 두렵습니다. 이제서야 떠나신 그 자리가 새삼 크게 보입니다. 먼저 연락드리지도 못하고, 그 은혜 너무 쉽게 잊고 지냈습니다. 아마 이 글을 보시겠지요. 지난 날 젊은 치기에 무례했던 것들 이제라도 용서를 빌겠습니다. 건강하시고 부산에 내려오시면 꼭 연락주십시오. 땡빚을 내서라도 부장선생님 좋아하시는 '이사다이(자연산 돔)' 꼭 대접하겠습니다. 등산 열심히 다니시고 오래오래 건강하십시오.
아직도 철없는 후배교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