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수학여행] 참소리 박물관
3월 31일 8시 57분. 참소리 박물관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박물관으로 몰려들어갔으나, 나는 뒤로 돌아서 경포호를 바라보았다.
부산에서 사는 내게 호수는 낯선 풍경이다.
경포호는 아직까지 봄의 기운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아이들이 다 들어가고 한참 후까지 이리저리 다니며 경포호를 담았다.
참소리 박물관에 가게되면 바로 앞에 있는 경포호를 꼭 보고 들어가기를 권한다.
인간이 만든 것 보다는 조물주가 만든 것이 더 인간에 가깝지 않을까?
참소리 박물관은 '에디슨 과학 박물관'과 '참소리 축음기 박물관'을 통칭해서 부르는 명칭이다.
아침 일찍 간다는 말에 직원분들과 관장님이 나오셔서 친절하게 학생들을 맞아 주셨다.
참소리 박물관 최대의 장점 중 하나가 '친절한 설명'과 그로 인한 '느린 관람'이다.
쓰윽 둘러보는 박물관은 산책로일 뿐이다.
관람비가 일반 7,000원 중고생 6,000원으로 조금 비싸게 느껴진다.
하지만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손성목 관장님이 직접 수집한 클레식 카들이 즐비하다.
못해도 대당 억단위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전 재산을 들여,온 세계를 다니며, 수집한 것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할 일이다.
복도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엄청난 양의 수집품들이 보인다.
게중에는 세계에 단 하나 뿐인 것들도 있다고 한다.
손성목 관장님의 수집은 초등학교 시절 왕따의 경험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 북쪽에서 사셨는데, 집안이 대단한 거부였다고 한다.
그래서 왕따를 막기 위해 선택한 것이 집 한 채 값의 축음기였다고 한다.
아이들은 자연스레 어린 손성목 관장님의 주위로 몰리게 되었다고 한다.
아이들은 안내하시는 분 앞에서 대답을 해가며 축음기 소리를 듣고 있고,
나는 역시나 뒤로 빠져서 촬영금지된 전시물들을 담았다. 몰래 몰래.
각종 TV들을 모아놓은 전시관에 들어섰다. 말그대로 천차만별이다.
층간을 이동하기 위해 복도로 들어서도 볼거리가 계속 눈에 들어온다.
각종 액자들만 제대로 보아도 하루가 부족하지 싶다.
에디슨 축음기의 상징인 '니퍼'라는 개다.
'주인이 죽은 뒤 주인이 좋아한 음악을 들으며 슬퍼했다'는 사연 을 이야기한 뒤에,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안내원의 설명이 붙어 실소하였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액자 하나를 담아보았다.
'삶은 하모니'라고 혼자 제목을 붙어본다.
초기 타자기들과 또 다른 액자를 담아보았다.
앞에 놓인 물건들 모두가 에디슨이 직접 발명한 것들이라고 한다.
에디슨의 3대 발명품. 전구, 영사기, 축음기. 얘네들이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까 싶다.
콜라TV와 축구공TV. 재미있게 생긴 것들을 도저히 다 찍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한꺼번에 담았다.
안내원들은 계속 사진을 찍고 있는 나를 제지하지 않았다.
이것도 교사의 특권인가 싶었다.
조선일보에 난 손성목 관장의 기사. 손관장님은 유명인이었다.
배우 안성기의 공간을 만들기로 약속도 되어있다고 한다.
축음기를 보고 신기해하는 임금. 아마 고종 정도 되지 싶다.
축음기 소리를 직접 듣고, 거대한 스피커가 있는 방에서 음악을 듣고는 관람을 그렇게 끝내었다.
한 시간이 채 못되는 시간이었지만, 빛과 소리로의 여행은 멋졌다. 1층에 마련된 기념품 판매점도 하나의 전시공간으로 활용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기념품도 고가라 쉽게 구입할 생각은 못하고 열심히 사진으로 담았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나오려는 찰나, 관장님이 기념사진을 찍자고 하셨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 그래서 바로 찰칵!
관장님은 지금 몸이 편찮으시다고 한다. 쾌유하시기를 기원한다.
박물관에서 답례로 선생님들에게 안내 책자와 '니퍼'라고 불리는 강아지 열쇠고리를 하나씩 주었다.
아싸, 큰 놈 민민이의 선물은 해결!
남은 말) 이제 수학여행 이야기가 부석사 하나 남았습니다. 너무 시간이 지나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