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은 변할 줄 아는 용기
[불멸] 1권, 이문열, 민음사, 2010.
[불멸]은 ‘의사義士 안중근’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이다. 총 2권에다 800쪽이 넘는 분량의 장편임에도 금세 읽혀질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이문열’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말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소설은 픽션과 논픽션 사이를 절묘하게 오가고 있다. 역사냐 소설이냐의 기준이 사실 여부에 의해 결정된다면, 왜곡된 시선으로 쓰여진 역사보다는 역사적 진실을 드러내려한 소설이 오히려 더 역사에 가까울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을 역사에 가까운 소설로 평가하고 싶다.
[불멸]을 읽으며 나의 ‘무지無知’를 절감하였다. ‘안중근’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는 것뿐이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각종 역사적 사건들 역시 역사시간에 배운 단 한 줄의 내용만이 간신히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불멸]을 읽는 내내 책을 더 열심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안중근의 아버지 안태훈은 황해도에서 으뜸가는 지방호족이었다. 단순히 돈많은 사람이 아닌, 세상을 뚫어보는 식견과 과감한 결단력에 행동력까지 갖춘 사람이었다. 그것이 비록 시대적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할지라도. 안태훈은 안중근이 27살 되던 해에 병사하기까지 함께 하며 안중근의 세계관을 결정지어주었다. 안중근이 아버지의 사후에 모색한 길도 아버지의 그림자를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였다. 부자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길을 걸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같은 생각으로 같은 길을 걸어간 안씨 부자는 행복했을 것이다.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을 당시 거기에 맞서 의병을 일으킨 사람들이 있었다. 그 의병을 갑오의려甲午義旅라고 하는데, 안중근의 아버지 안태훈은 황해도지역에서 가장 왕성한 반동학 전투를 벌였다. 이때 안중근도 처음으로 죽고 죽이는 전투에 처음 참여하게 된다. 동학에 반대하는 의병이니만큼, 역사적인 평가도 갈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안태훈은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격변의 시대에 소신 있게 자신과 가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이러한 행동은 안중근에게 '용기'란 것이 확고히 자리잡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만큼은 틀림없다. 어쩌면 이미 태어날 때부터 안중근의 아버지의 고집과 용기를 타고났다고 보는 것이 옳을 지도 모르겠다. 어린 안중근에게 갑오의려 활동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격렬한 두 번의 전투 후, 안중근은 패닉 상태에 빠져버리게 된다. 역사적인 사실은 아니겠지만, 이문열의 설명을 듣자면 이러하였다.
박석골 전투만 해도 아직 몸과 마음이 다 여물지 못한 열여섯의 중근에게는 무리였다. 그런데 보름도 안 돼 그보다 더 모진 취야 싸움을 다시 겪고, 동비 토벌의 거창한 대의에 가려져 있던 처참한 살육의 실상을 보게 되자 더는 그 충격을 버텨 내지 못했다.(98)
이전까지 나는 ‘도마 안중근’의 ‘도마’가 한자로 만든 별호 쯤으로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도마’는 세례명 ‘토마스’의 한글식 표기였다. 안중근이 천주교인이 되었던 유일한 이유 역시 아버지 안태훈이었다. 안태훈은 역사의 흐름을 읽어낸다고 내심 자부를 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서구열강의 힘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천주교에 입교하여 세례를 받게 된다. 천주교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온한 동기였겠지만, 혹은 이문열에 의해 그렇게 동기화 되었을 수도 있지만, 집안 사람 모두를 입교시키고 누구보다 활발한 전교활동을 하게 된다. 물론 여기서도 안중근은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성심성의를 다하여 천주교를 위하여 활동한다. 뒷날 ‘천주교’ 자체는 믿을 것이 될 지는 몰라도 열강의 ‘천주교인’들은 믿을 것이 못 된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격어보고 아는 것의 가치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절대적인 아버지에 대한 신뢰 속에 자신에 대한 냉철한 반성을 하던 안중근이 아버지의 영향에서 비로소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아버지 안태훈이 죽기 얼마 전이었다. 소설속에 드러난 아버지 안태훈의 대사에서 갑자기 늙어버린 듯한 안태훈의 모습은 이 시대에도 자식된 자들의 심금을 울릴 만하다.
"그런 일이라면 이제는 아범이 알아서 해라. 앞으로 이 세상을 더 오래 쓸 사람은 아범이 아니냐? 내게도 한때는 세상 모든 이치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듯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것도 모르겠구나.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해석할 수가 없고 미래는 전혀 예측이 되지 않으니." 안태훈은 그렇게 모든 결정을 중근의 뜻에 맡겼다.(353)
“지금 일어나는 일이 해석되지 않고, 미래가 전혜 예측되지 않는다”는 안태훈의 말은 이문열에 의해 지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을 듣고 있자니, 아버지보다 훌쩍 커버린 서글픈 자식의 모습이 겹쳐진다. 나 역시 아버지를 넘어서기를 바랬지만, 그렇게 되면 아버지가 갑자기 늙어버리실 것 같은 두려움에 넘어서기를 주저해야했다. 아니 넘지 않으련다.
2011년 오늘날도 진보니 보수니 하며 수많은 사상논쟁이 있다. 나는 그에 대해서는 완전히 문외한이다. [불멸]을 읽으며 ‘근왕주의자’ ‘공화주의자’ ‘무장투쟁론자’ ‘애국계몽론자’ ‘천주교인’ ‘유교론자’의 다양한 면모를 보인 안태훈과 안중근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였다. 앞으로도 평가를 내리고 싶지 않다. 사상논쟁에 휘말리기 시작하면 실천은 설 자리는 없어지고 공허한 메아리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안중근이 역사적으로 평가 받는 것은 ‘끊임없는 자기 변화’를 시도하며 과감히 자신을 버릴 수 있는 ‘용기'를 '실천’하였다는 것이 아닐까? 후진할 수 없는 자동차는 결국 파괴될 뿐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출발할 용기, 그것이 헨들이고 브레이크가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이제야 [불멸] 1권을 다 읽었다. 1권은 안중근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아버지 안태훈의 이야기에 가깝다. 책 읽는 내내 ‘아버지’란 존재가 자식에게 어떠한지, 또 어떠해야하는지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2권은 아버지 품을 벗어난 안중근 생의 가장 치열한 시기를 다루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