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가 읽을 만한 책의 뒷 이야기, [만화로 교양하라]
[만화로 교양하라], 이원복·박세현, 알마, 2011.
우리 집에는 내 책이 1,000권 정도 있다. 학창 시절, 각종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면, 거의 전액을 책을 사는데 썼다. 이런 이상한(?) 취미는 외삼촌의 영향 때문이었다. 외삼촌은 당시 모대학 국문과에 박사과정으로 계셨는데, 습관적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책을 사서 10년 뒤에라도 1줄이라도 보면 그 가치는 다한 것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미 한문학과에 가서 박사과정을 밟고 교수가 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던 나는 그 말을 무슨 신조처럼 여겼던 것 같다. 그래서 책을 당장 보지 않더라고 사서 모으기 시작하였다. 석사과정을 끝으로 학문의 세계를 벗어난 지금도, 그 책들은 무슨 훈장처럼 떡하니 장식으로 남아있다. 그마저 아이들의 책에 밀려 창고로 들어간 것이 반이지만.
최근 들어서 책이 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가능하면 사지 않는다. 꼭 사고 싶다면 이렇게 자문한다. ‘우리 아이들도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가?’ 그런 자문을 하고 나면 어지간한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게 된다. 최근에 그런 자문을 통과하여 서재에 꽂힌 책이 몇 십 권 쯤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 12권과 [가로세로 세계사] 3권이다. 물론 옛날에,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초중등시절에도 읽었었다. 그리고 작년에 책을 구입하고 나서 다시 두 질 모두 2번씩 읽었다.
[만화로 교양하다]는 박세현이 이원복을 인터뷰하고서 엮은 책이다. 1부에서는 [먼나라 이웃나라]에 관한 인터뷰의 내용이 실려있다. [먼나라 이웃나라]의 못다한 이야기 정도의 글인데,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었다. 2부에서는 ‘먼 이원복 VS 이웃 이원복’이라는 표제하에 이원복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는 2부를 흥미롭게 읽었다. 흥미를 가져다준 키워드를 제시하자면 이렇다.
“40년/연재/즐거움/공부/깊이/여행/댓글”
이원복은 40년 동안 연재하고 있는데, 한 번도 마감시간을 어긴 적이 없다고 한다. 40년을 마감에 쫓긴다는 것은 40년을 감옥에서 지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이원복은 그것이 즐거움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즐겁다고 한다. ‘好之者不如樂之者(좋아하는 사람이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라는 말이 딱 맞는 경우이다. 40년 세월을 즐기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다시 여행을 다녔다니, 이원복만큼 행복한 사람도 드물다고 해야겠다.
박세현은 이원복은 ‘히스토리텔러’로 명명하였다. 우리말로 굳이 풀이하자면 ‘역사 만담가’쯤 되려나. 질 낮은 문화로 인식되던 만화를 교양물로 올려놓은 것이 이원복의 업적이요, 지극한 보수 꼴통으로 욕을 많이도 먹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원래 보수라는 것도 가치 있는 사고방식이지만, 거의가 기득권자의 편리한 방패막일 뿐이기에, 무슨 욕처럼 되어버렸다. 그러나 40년을 일관된 생각과 실천으로 살아온 이원복의 보수는 그런 질낮은 보수와는 다른 소신있는 보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원복은 자신의 만화에 대한 리뷰나 댓글을 의도적으로 읽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는 자신의 작품에 미칠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소통이 중시되는 요즘 무슨 소리인가 하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내 공부와 노력을 믿고 자신만의 개성적인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허영만· 이현세 · 이원복. 이들은 소설가 못지않은 현장답사와 방대한 독서를 기반으로 집필을 한다. 이제 아무도 만화를 질낮은 어떤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혹시 아직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이 질이 낮아서일 것이다.
40년을 쉬지 않고, 늘 즐거워하며, 저작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 나의 아버지와 내가 읽었고, 내 아이가 읽을 책을 쓸 수 있었다는 것. 참으로 부럽고도 본받을 만한 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