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천천히 읽으라는 충고를 실천하며 느낀 것들, [책을 읽는 방법]

빈배93 2011. 10. 15. 09:50

 

    최근에 책 읽는 패턴이 극심하게 변했다. 글 쓰는 패턴도 많이 변했다. 김훈의 에세이 자전거 여행을 베끼면서 일어난 변화다. 이것이 좋은 변화일까? 좋지 않은 변화일까? 무의미한 변화일까? 섣불리 판단할 문제는 아닌 듯하다. 내게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말해보자.

 

    첫째, 책보는 시간이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요즘은 하루에 3시간 정도 책을 본다. 그와 반비례하여 블로그하는 시간이 줄었다. 하루에 1시간을 넘기지는 않는 것 같다. 3시간의 독서 시간 중 적어도 2시간은 자전거 여행을 베낀다. 일주일간 정말 열심히 베꼈다. 현재 84쪽까지 진도가 나갔다. 블로그하는 시간과 순전히 책만 읽는 시간을 합쳐도 1시간을 넘지 않고 있다.

 

    둘째, 독서량이 확 줄었다. 지금껏 1주일에 34권의 책을 읽어왔다. 그런데 이번 주에는 1권 반 정도를 읽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자전거 여행을 시간 나는 족족 베끼다 보니, 자연스레 순전히 책만 읽을 시간이 줄어든 탓이다. 그마저 가능한 천천히 읽으려다보니 독서량이 확 줄어들었다.

 

    셋째, 깊이 있는 독서가 되어가고 있다. 김훈의 책을 이전에 몇 권 읽어봤다. 자전거 여행의 경우는 읽다가 포기했었다. 이전에 김훈의 책을 읽은 것은, 베껴쓰면서 읽는 것에 비한다면, 겉핥기식의 독서였다. 그 속에서 내가 느낀 것은 어렵다. 너무 딱딱해서 불편하다, 깊이가 있다고 하는데 그건 잘 모르겠다.’였다. 그런데 요즘 느끼는 것은 명불허전이다. 연필로 꾹꾹 눌러쓴 김훈의 깊이는 연필로 꾹꾹 눌러 써가며 읽어야 그 진가를 진정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만큼의 깊이와 수사를 갖춘 작가는 없다. 굳이 찾자면 신영복 정도가 될까. 그래서 자전거 여행을 다 베끼고 나면 신영복의 나무야 나무야를 베껴볼 생각이다. 나무야 나무야는 지금 까지 두 번을 읽었다. 처음에는 그냥 읽었고, 두 번째는 워드프로세서로 전문을 쳤었다.

 

 

     2년전에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을 읽는 방법을 읽었다. 그 요지가 슬로 리딩이었다. 머리로만 알고만 있었던 것을 직접 실천해보니, 많이 읽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마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 아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임을 새삼 확인했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한 달에 책을 백 권 읽었다느니 천 권 읽었다느니 자랑하는 사람들은, 라면 가게에서 개최하는 빨리 먹기 대회에서 십오 분 동안 다섯 그릇을 먹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속독가의 지식은 단순한 기름기에 불과하다.(32)

 

    나는 대단한 소화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음식에 있어서도 그렇고, 독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지금껏 읽어온 수많은 책들이 잘 소화되어 정신의 자양분이 된 것이 얼마나 될까? 독서를 통해 앞으로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지만, 현재로서는 천천히 한 자 한 자 직접 베껴서 읽는 독서를 오래도록 지속하고 싶다. 허나, 하루에 4시간을 베꼈는데 기껏해야 10페이지를 넘기지 못하니, 그간의 빠른 독서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허무함과 약간의 의구심이 여전히 남아있다. 독서에 대한 패러다임이 교체되는 시점이라 그럴 것이다. 지금 이시간도 나는 여전히 자전거 여행을 베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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