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2

어느 퇴임 환송연 풍경

빈배93 2011. 12. 11. 06:00

<자작 소설입니다. 한 페이지 분량의 소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여러 페이지 보다 한 페이지만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참 매력적이라 생각했습니다. 다 쓰고 보니 왠지 쓰다만 느낌입니다. 차차 발전하리라 믿어봅니다.>

 

다 왔다.

30년을 잘 왔다. 교사생활 30년이 다 되어가자, 교사 앞에 원로라는 말이 붙었다. 불과 23년 만에 원로교사라는 말이 한꺼번에 떨어질 때가 되었다. 아이들도 대학을 졸업해 다들 자리 잡았고. 이제 남은 건 초로에 들어선 우리 부부의 모습이다. 작년에 정년을 하는 선배를 보고도 그게 남의 일인 줄만 알았는데, 그게 이젠 내 일이다.

 

저녁에 동료들이 마련한 환송식이 있다. 그게 내 마지막 학교 행사다. 아니다. 하나 더 남았다. 2월이 되면 하루 더 나와서 퇴임식을 해야 한다.

 

김 선생님, 저녁에 학교 아래 고깃집에서 선생님 환송식을 할거에요. 못 다한 이야기 많이 하셔야죠.”

 

허허……무안하게 환송식은 무슨 환송식…….”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한 시간을 기다렸다. 약속된 장소로 내려갔다. 같은 부서 선생들 몇 명, 같은 교과 선생들 몇몇이 앉아 있다. 한 두 테이블은 벌써 고기를 굽고 소주를 들이키고 있다.

 

김선생님, 왔심니꺼. 빨리 여기 앉으이소. 그 동안 참 욕봤심니데이.”

 

자리에 앉자 누구는 소주를 그득히 따르고, 누구는 연신 아주머니를 불러댄다.

 

 

아줌마! 여기 파저리게 하나 더 하고 수저도 한 벌 가져다주고. 아 선생님 한 잔 하이소.”

 

같은 테이블에 앉은 선생들은 다들 술잔에 입술만 대었다가 내려놓는다. 시원하게 한 잔 비우는 사람은 구석에 앉은 차 없는 총각 선생 하나뿐이다. 여기저기서 술을 많이도 권한다. 그래 마지막이니까 다 마셔주마. 얼마나 마셨는지 모르겠다. 화장실 가느라 일어서보니 휘청한다.

 

요즘 아새끼들 말이 안통해. 눈 풀려가지고, 전부 자빠져 자고. 재미가 없어. 옛날처럼 애들이 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확 줘 팰 수도 없고. 정년까지 어떻게 버티지…….”

 

문제는 문제에요. 부모들은 얼마나 별난데요. 자기 아이가 어떤지 생각도 안 해보고, 담임이 뭐하느냐고 따지는데, 참 참이더라구요.”

 

그래도 오래오래 선생질 하려면, 애들하고 친하게 지내야죠. 우리가 이짓 관두고 나가면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어요. 그래도 괜찮은 아이들도 많이 있잖아요. 게들보고 선생질하는 거죠. 감당이 안되는 아이들은 그냥 놔둬야지 어쩌겠어요.”

 

마마, 고마하입시다. 학교밖에 까지 나와 학교 이야기 하지 마입시다. 술맛 떨어지게스리.”

 

시끌벅적하다. 처음에 술잔에 입만 대던 사람들이 어느덧 한잔 두잔 술이 들어가더니, 일부는 차를 몰고 집에 들어가기를 포기한 모양이고, 일부는 보이질 않는다. 보이지 않는 사람은 조용히 집을 갔을 게다. 술이 과했는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후배가 잡아주는 택시에 실렸다.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차안에 앉아 있노라니 온갖 생각이 다 스쳐간다.

 

그 사람들, 이 교정 다 그리울테지. 그래도 한 세월 잘 보냈지.’

 

눈이 감긴다.

 

고깃집에는 김선생을 환송한 멤버들은 그대로 남아 술잔을 기울인다.

 

갔으니까 말이지, 아따 저사람, 남들은 중간에 잘도 나가던데. 끝까지……. 저런 사람이 잘 사는 기라.”

 

 

몇몇은 희미하게 웃고, 몇몇은 연신 소주를 부어 넣는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