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내 마음의 옥탑방] 속물이 되기 위한 꿈을 꾸는 여자

빈배93 2012. 1. 24. 06:00

「내 마음의 옥탑방」,『1999년도 제23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문학사상사, 1999.

 

# 1  책 선물은 선물한 사람을 추억하게 한다

 

「내 마음의 옥탑방」은 박상우의 1999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이다. 대학시절 선배로부터 받은 책인데, 서재에 꽂아둔 지 10년도 더 지나 읽게 되었다. 일단 서재에 꽂아두면 언젠가는 이렇게 읽게 되나 보다. 책을 준 선배를 만나본 것이 얼마나 되었는지도 까마득하지만, 이 책을 보며 대학시절 꽤나 열심히 공부하고 진지했던 그 선배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은 부산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며 지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책을 선물한다는 것은 선물한 사람을 추억하게 한다.

 

 

# 2  「내 마음의 옥탑방」의 줄거리

 

'나'는 서울 큰 형의 집에 얹혀 사는 무능한 셀러리맨이다. 국문학을 전공했지만, 관련도 없고 적성도 맞지 않는 스포츠 레저 용품을 판매한다. '내'가 다니는 회사마저 큰 형의 친구가 사장으로 있는 회사다. 어느날 사장으로부터 기생충 운운하는 말을 듣고 정신적 공황에 빠진다.

 

그러다 불현듯 백화점 1층에서 안내를 하는 그녀가 눈에 들어온다. 처음 본 것도 아닌데, 갑자기 그녀가 눈에 들어온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고 그녀는 적당한 거리에서 '나'를 받아준다. 더 다가가려하자, 그녀는 자신의 옥탑방으로 '나'를 이끈다.

 

그녀의 꿈은 옥탑방에서 내려다보이는 저 아랫동네의 휘황찬란함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가 속물스럽지는 않았다. 어릴적 부터 그녀에게 닥쳐온 현실이 속물스러운 삶을 살고 싶다는 꿈을 갖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순수한 사랑으로 다가온 '나'를 받아들일 수 없음을 괴로워하면서도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 '나'는 그녀의 그런 꿈을 이루어줄 아무런 능력도 비젼도 없다.

 

'나'는 그녀와 함께하는 꿈을 꾸기 위해 그녀의 옥탑방을 오르고, 그녀는 물질적 풍요가 있는 세상에 살고싶은 꿈을 위해 아랫동네로 꾸역꾸역 내려간다. 어느날 그녀의 꿈을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나'는 한 편의 시로 이별을 고한다. 또 다른 어느날, 그녀는 답장을 남기고 영원히 이별을 고한다.

 

10년도 더 지난 어느날 평범하고 안정된 가정을 갖고 사는 '나'는,  도시의 옥탑방을 바라보며 그녀와의 추억을 곱씹는다. 

 

 

# 3  속물스러움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성聖'의 반대말을 '속俗'이라 할 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속俗'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인간으로 태어나지 말던가, 인간에서 벗어나야만 '성聖'에 이를 수 있다. 내 안에 있는 속물스러움은 그리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기가 가질 수 밖에 없는 숙명일 뿐이다.

 

까뮈는 "돈이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은 정신적 속물기질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소설 속 주인공 '나'는 까뮈의 말대로라면 정신적인 속물기질에 투철한 사람이다.  프루스트는 "속물들에 대한 증오는 그의 속물 기질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렇게 본다면 '나'의 속물에 대한 증오는 스스로의 속물 기질에 대한 반증일 뿐이다. 소설 속 그녀는 '나'보다는 더 좀더 순수한 상태의 속물스러움을 갖고 있는 것이다.

 

 

소설의 결론은 '나'도 그녀도 모두 속물스러운 세상으로 내려가 안주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작자는 결국 현실에 안주할 수 밖에 없는 다양한 과정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 아닐까? 그녀가 '나'에게 퍼부은 말들은 결국 우리의 꿈이자 현실이기도 하다. 그 꿈과 현실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지금 민수 씨가 한 말은 신들에게나 어울리는 거예요. 여기 서서 그런 시선으로 세상을 굽어보면…… 저 낮은 곳으로 두 번 다시는 내려가기 싫어져요. 저 가파른 언덕길을 하루에 두 번씩 힘겹게 오르내리며 내가 무엇을 꿈꾸는지 아세요? 지금 민수 씨가 말한 저 가련한 고난의 세계, 저곳이 아무리 미물스럽고 속물스럽다고 해도…… 그래도 저곳으로 내려가 편안하게 안주하고 싶다는 게 아주 오래 전부터 키워 온 내 꿈이에요. 저곳의 주민이 되고, 저곳의 주민들처럼 미물스럽고 속물스럽게 사는 거…… 그게 나에게 남겨진 마지막 꿈이라구요."(40쪽) 

 

 

# 4  속물스러움을 토양삼아 성스러운 삶을 가꾸어야

 

현실에 순응해서, 신화 속의 시지프처럼 끝없이 우리는 살아간다. 그 고난의 길을 제 갈길로 인정하며 살아낸다. 그 속물스럽고 미물스러움에 갇힌 자신을 부정하기 위해, 우리는 나보다 더 솔직하게 속물스러움을 인정하는 사람을 비난하며, 그 비난의 뒤로 나의 부끄러움을 숨기고 산다.

 

"일부 세련된 사람들은 부자들을 위해 바느질을 하러 가는데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고 말한 콜레트의 발언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속물스러움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자. 그 속물스러움을 토양삼아 성스러운 삶을 가꾸어 나간다면, 성과 속이 충돌하는 괴리감에서 얼마간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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