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 법정스님의 독서론을 듣다
법정의 독서론
책을 잘 읽고 싶다는 나의 바람은 어제 오늘의 것이 아니다. 일던 책 속에서 문득 책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유심히 살펴보고 밑줄을 긋는 것이 버릇 아닌 버릇이 되었다. 『무소유』를 읽다보니 독서와 관련된 이야기가 꽤나 있다. 법정의 온전한 독서론이라고 할 수 없지만, 이렇게 따로 때어서 그의 생각을 정리해 보려 한다.
양서良書, 읽다가 자꾸 덮이는 책
나는 책을 읽다보면 자꾸만 책장을 빨리 넘기고 싶다. 거의 병적이다. 천천히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을 천천히 읽을 필요는 없다. 천천히 읽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천천히 읽어야 할 책을 천천히 읽는 것. 그것이 진정한 슬로 리딩이다. 양서란 무엇인가? “진짜 양서는 읽다가 자꾸 덮이는 책이어야 한다. 한두 구절이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주기 때문이다.(19)” 천천히 읽을 수밖에 없게, 생각의 실마리를 던져주는 책이 양서고, 그런 책을 천천히 음미해나가는 것이 책을 잘 읽는 방법이다.
양독良讀,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을 때까지 읽기
법정은 『화엄경』의 「십회향품十廻向品」을 10여 회 독송했다. 「십회향품」은 무려 아홉 권이다. 또 『어린 왕자』를 스무 번도 넘게 읽었다. 그래서 “새삼스레 글자를 읽을 필요도 없어졌다. 책장을 훌훌 넘기기만 해도 네 세계를 넘어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행간에 쓰여진 사연까지도, 여백에 스며 있는 목소리까지도 죄다 읽고 들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옛날 선비들이 사서를 10번을 읽어야 사서를 보았다고 말하는 의미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한 번 스르륵 읽고 독후감을 남길 책이 있고, 두고두고 읽으며 가장 뒤늦게 독후감을 남길 책도 있다. 좋은 책을 찾기 위해서, 많은 책을 널리 읽는 것은 필요하다. 남이 정해준 필독서는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일 뿐이다. 그래서 양서를 찾기 위한 박람이 필요하다. 그러나 오로지 널리 많이 읽는 것만이 전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한 달에 20일은 널리 많이 읽고, 열흘 정도는 그 중에서 어러 번 읽을 만한 책을 선택해 반복하고 또 반복하면 어떨까? 그렇게 해서 책 속의 “다른 목소리를 통해 나 자신의 근원적인 음성을 듣는(19)”다면 잘 된 독서일 수 있겠다.
양사良思, 걸으며 생각하기
책은 책상에 앉아서 읽어야 하지만, 생각은 굳이 책상에 앉아서 할 필요는 없다. 아니, 책상을 벗어나 산책을 하는 것이 생각을 위해 더 좋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몸의 동작만이 아니라 거기에는 활발한 사고 작용도 따른다.(43)”고 한다. 내 경험에 비추어보아도 맞는 말이다. 독서가 지적활동이라지만, 활발한 사고 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몸을 움직이는 산책이니, 독서는 지적활동이면서 육체적 활동이기도 해야 한다.
양척良尺, 책을 통해 나와 너를 헤아리다
법정은 『어린 왕자』를 사랑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적어도 그에게 있어서 『어린 왕자』는 경전이었고, 나와 너를 헤아리는 자이고 척도였다. 감동 깊게 읽은 책을 선물하고, 그 책에 대한 물음으로 나와 너를 헤아리는 방법은 독서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고상한 인물 판별법이다.
“지금까지 읽은 책도 적지 않지만, 너에게서처럼 커다란 감동을 받은 책은 많지 않았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나한테는 단순한 책이 아니라 하나의 경전이라고 한 대도 조금도 과장이 아닐 것 같다. 누가 나더러 지묵紙墨으로 된 한두 권의 책을 선택하라면 <화엄경>과 함께 선뜻 너를 고르겠다. 가까운 친지들에게 <어린 왕자>를 아마 서른 권도 넘게 사주었을 것이다. 너를 읽고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이내 신회감과 친화력을 느끼게 된다. ……너를 읽고도 별 감흥이 없어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나와 치수가 잘 맞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다. 어떤 사람이 나와 친해질 수 있느냐 없느냐는 너를 읽고 난 그 반응으로 능히 짐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너는 사람의 폭을 재는 한 개의 자尺度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