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

욕쟁이 할머니, 도지사도 국무총리도 다 손님일 뿐이야!

빈배93 2012. 2. 16. 06:30

   삼백집은 하루에 300그릇만 판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집에는 갖가지 일화가 많다. 공화당 시절에 집주인 할머니가 콩나물국밥을 먹던 총리에게 "지가 국무총리면 다냐!"고 쏘아붙여서 욕쟁이 할머니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한번은 5·16쿠데타 직후인 1961년에 현역 준장 출신의 신임 도지사가 유명한 삼백집을 찾았다. 그는 하얀 차일 밑의 긴 나무의자에 걸터앉아 옹색하게 국밥을 먹고 나서는 음식 맛이 어떠냐고 묻는 수행원들에게 대수롭지 않게 "맛은 있는데, 조금 지저분하네!"하고 말했다. 그 한마디에 곧바로 도청 관계자들은 부산을 떨었다. 욕쟁이 할머니에게 시멘트를 지원해 줄 테니 바닥을 깨끗이 덮어버리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를 할머니가 고집스럽게 거절하자 공무원들은 전전긍긍하다가 이번에는 그 아들에게 통사정을 하였다.

 

   그러던 차에 할머니가 시골에 제사가 있어서 며칠 집을 비우게 되었다. 이 틈을 타서 아들과 공무원들이 합세하여 부엌이며 마당 할 것 없이 깨끗이 시멘트로 덮어버렸다.

 

  며칠 후 시골에서 돌아온 할머니는 이를 보고 몹시 애통해하며 분개했다고 한다.

 

   "이 뭘 모르는 놈들아, 단단하고 울퉁불퉁한 진흙바닥이 있어야 새우젓이나 음식국물이 바닥에 떨어져도 미끄럽지 않고, 진흙은 지가 알아서 냄새를 없애주는데, 이렇게 시멘트로 몽땅 처발라버렸으니, 너희들이 매일 부엌으로 출근해 물로 쓸고 닦아라!"

<출처: 『상상+ 경제학 블로그 』, 81∼82쪽.>

 

# 1. 도지사의 한마디에 과다충성하는 공무원

 

   서슬이 퍼랬던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공무원이었기에 이해도 된다. 그러나 과다충성하는 인간형은 오늘도 변함없이 존재하기에 꼭 시대 탓만 할 수는 없다. 권력이라는 것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가 보다. 과다충성을 하는 '그 인간'들은 보통 자기에게 쥐어진 조그만 권력을 충실히 휘두르는데, 그 꼴을 보고 있으면 배알이 뒤틀린다. 아! 나는 출세하기는 힘들겠다.  

 

 

# 2. 어머니의 깊은 뜻을 몰랐던 아들

 

   부모가 잘나면 자식도 잘나야 할 것 같은데, 그 반대인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그 잘났던 연암의 아들도 다산의 아들도 아비만은 못했다. 부모라는 나무가 너무 커서, 자식에게 갈 햇빛을 가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너무도 우뚝한 부모때문에, 자식이 주눅이 들어서일까? 

 

 

# 3. 도지사도 국무총리도 손님일 뿐이었던 할머니

 

   태어날 때는 누구나 사람으로 태어나는데, 태어난 그 순간부터 이미 사람이 아니다. 어떤 아이는 '가난한 집 아이'이고 어떤 아이는 '부잣집 아이'로 불린다. 어른이 되어서는 어떤 사람은 그냥 사장이고 어떤 사람은 그냥 사원이고 어떤 사람은 백수로 불린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는 세상에서, 도지사도 국무총리도 그냥 손님으로 본 욕쟁이 할머니는 치명적인 매력을 갖고 있다. 선생인 나도 끊임없이 반성해야 한다. 학생을 그냥 학생으로 볼 수 있도록.  

 

 

# 4. 시멘트로 처바른 세상

 

    흙 길이 곡선이라면, 시멘트 길은 직선이다. "잘 살아보세!"하며 일으킨 새마을 운동으로 점과 점을 잇는 최단거리인 직선만이 선대접을 받게 되었고, 그래서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도, 쉬엄쉬엄 걸어가는 삶도, 찿기 힘들어졌다. 최근 들어 흙의 소중함을 다들 이야기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흙을 밟을 곳은 여전히 별로 없다. 자연의 소중함을 이야기하지만, 오늘도 여전히 이 산 저 강을 파헤쳐 시멘트를 처바르고 있다.(좀 산다는 나라 중에서, GNP에서 토목·건축이 차지하는 비율이 20%가 넘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고 한다.) 말이 나온 뒤에 변화가 일어난다고는 하지만, 말과 변화의 거리는 아직도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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