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소국 그랜드펜윅의 뉴욕 침공기] 인구 6000명의 국가에 무릎 꿇은 강대국들!
△ 뉴욕을 침공한 그랜드 펜윅의 궁수와 중기병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레너드 위벌리 지음, 박중서 옮김, 뜨인돌, 2010.)를 읽었다. 일전에 읽은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월스트리트 공략기』보다 시간상으로 앞선 시기를 다루고 있다. 줄거리는 이렇다. 그랜드 펜윅은 4,000명 이던 인구가 6,000명으로 늘어나자, 제정 압박에 시달린다. 여러 고민 끝에 한 젊은이가 획기적인 해결책을 던진다. 전쟁이었다. 미국을 상대로 한 전쟁. 전쟁에서 지면 각종 원조금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런데 말도 안 되지만, 전쟁에서 승리한다.(그랜드 펜윅 의회는 승리하고 돌아온 장군을 계획대로 패배하지 않았다고 타박한다. 웃음.) 교전다운 교전은 없었지만, 핵물리학자와 그가 개발한 Q폭탄을 얻게 된다. 그런데 Q폭탄이라는 것이 핵폭탄의 수백 배의 위력을 가진 것이라, 그랜드 펜윅은 세계에 유일한 핵 억제력을 가진 국가가 된다. 그리고 그렌드 펜윅은 핵무기 폐기에 앞장서고 이를 실현한다.(거대한 힘 앞에 너무도 쉽게 굴복하는 강대국들을 보고 통쾌함을 느끼게 된다.) 앞서 읽었던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월스트리트 공략기』보다 더 황당한 이야기다. 그런데 재미있다. 황당해서 더 재미있다. 물론 황당함이 재미를 보증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오늘의 세계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황당한 일을 생각해 볼 때, 이 소설의 황당함은 황당함을 넘어선 진실을 함유하고 있다. 그것이 재미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 책을 두고 한겨레에서는 “강대국과 약소국, 힘과 정의, 전쟁과 평화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고 평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기본적인 설정이 주는 재미 외에도 소설 속 인물의 대사도 책 읽는 재미를 더하는 데 한 몫 한다. 그 대사들은 사람과 세태를 절묘하게 풍자하고 있다. 그리고 읽는 사람을 생각하게 만든다. 몇 개를 제시하자면 이렇다. “내가 이제껏 본 왕들은 하늘의 도우심을 입기는커녕 사람들만 잔뜩 죽이고 왕위에 오르더군. 왕이 되는 법이 그런데 대공이라고 다를 게 있겠나.”(12) “그랜드 펜윅에 공산주의자가 되려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 공산주의자란 자기보다 남들이 뭔가를 더 얻는 게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거든요.”(20) “저는 공산주의가 싫습니다. 세상에 나하고 동등한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요. 저는 수많은 사람들보다 우월한 동시에 열등해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민주주의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죽어라고 노력해야 겨우 글줄이나 읽는 사람과, 무려 24가지의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똑같이 한 표씩 행사하다니, 말도 안 되지 않습니까. 물론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절대적인 평가기준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예를 들면 그렇다는 것이지요.”(31) “모든 것은 생명을 지니고 있고, 그것을 지키고 싶어 합니다. 그 때문에 스스로 창조할 수도 없는 생명을 파괴할 권리가 사람에게 있는지, 우리는 늘 고민해야 하는 겁니다. 아들과 내가 나무를 베어낼 때, 우리는 단지 나무 한 그루를 베는 것이 아니라 그 나무가 과거에 맺은 모든 관계며, 미래에 줄 기쁨까지 베어내는 셈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이건 중요한 사실입니다. 그걸 깨달으면 나무 한 그루를 베는 것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222) 이 소설은 냉전이 맹위를 떨치던 1950년대에 출판되었다. 이제는 소비에트 공화국도 없고, 공산주의라는 이념이 자유민주주의의 대척점에 놓여있지도 않다. 그러나 오늘날과 변함없는 것도 있으니, 그것은 바로 국제 사회에서 통용되는 최고의 수단은 ‘힘’이란 사실이다.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하는지, 그리고 그 ‘힘’가 갖는 폭력성과 허망함이 어떤 것인지, 이 소설을 통해 다시 바라보게 된다. 정치심리학자 제럴드 포스트는 “북한의 김정일은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의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김정일은 죽고 없지만, 전쟁 가능성을 통해 미국을 이용해왔고, 앞으로도 이용해 먹으려는 북한의 상황과도 흡사하다.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을 생각하면 그래선 안 되는데, 살짝 미소마저 띠게 된다. 이제 읽어야할 레너드 위블리의 소설이 2권 남았다. 이미 읽은 두 권의 책은 각각 하루 만에 다 읽어치웠다. 남은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달나라 정복기』와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석유시장 쟁탈기』는 조금 아껴둘 생각이다. 한 번에 다 읽어버리기엔 아깝다. 좌우지간 레너드 위블리는 천재다. 그렇게 말해도 전혀 아깝지 않은 작가다.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