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악했던 아이 김유신, 누구를 보고 배웠을까?
△ 왜 얼굴에 그림자가 진거야? 그래도 나만 그림자가 져서 다행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려 있는 유명한 고사 「참마斬馬」를 통해 '나는 부모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돌아본다. 번역과 현토, 잡설 모두 직접 작성한 것임을 밝혀둔다. 번역飜譯 만명萬明은 김유신金庾信의 모부인母夫人이다. 유신이 아이 때, 어머니는 날마다 엄하게 가르치셨다. 때문에 유신은 함부로 교유하지 않았다. 어느날, 우연히 여기女妓 천관天官의 집에서 머물게 되었다. 어머니가 말하였다. “나는 네가 성장하여 공명을 세우기를 바랬다. 헌데, 지금 어린 것과 함께 기방과 술집에서 노닥거렸단 말이냐?” 유신이 어머니 앞에 나아가 다시는 그 집 문을 지나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어느날 술에 취해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이 옛 길을 알아 잘못해서 창가娼家에 이르렀다. 어린 기녀가 한편으로 기쁘고 한편으로 원망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나와서 맞이하였다. 공은 술이 깬 뒤, 말을 베고 안장을 버리고는 돌아왔다. 기녀는 원망의 노랫말을 담은 곡曲을 하나 지어 마음을 전하였다. 현토懸吐 萬明은 金庾信의 母夫人이라. 庾信이 爲兒時에 母日加嚴訓하여 不妄交遊라. 一日에 偶宿女妓天官家라. 母曰:“我望汝成長立功名한대 今與少兒遊戱妓房酒肆耶아?”庾信은 卽於母前하여 自誓不復過其門이라. 一日에 被酒還家라가 馬解舊路하여 誤至娼家라. 妓兒가 且忻且怨하여 垂淚出迎이라. 公旣醒에 斬馬棄鞍而返이라. 女作怨辭一曲하여 傳志라. 잡설雜說 교직에 있다보니 참 다양한 학생들을 만난다. 동시에 그만큼의 다양한 부모들도 만나게 된다. 조금 큰 말썽을 일으킨 학생의 부모님을 학교로 모시는 일이 가끔 있다. 세상 부모가 다 그렇겠지만, '내 아이는 결코 그럴리가 없고, 친구 잘못 사귀어서 그렇게 되었다'는 믿음만큼 굳건한 것이 또 있을까? 그네 어머니들도 평소에 "친구를 가려서 사귀어라." 혹은 "좋은 친구 만나라."는 말을 수없이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등잔 밑이 어두웠는던 것을? 지금으로부터 1,000년도 더 된 신라의 어머니 역시 그러하였던 것이다. 친구 잘 사귀라고 가르쳤던 만명부인. 그녀에게는 바로 이 시대까지 통용되는 보편적인 어머니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다. 간혹 너무나 영악한 학생을 만나게 되면 할 말을 잃어버리게 된다. 말을 베어버린 어린 김유신에게서 나는 그 영악함을 느낀다. 혹자는 그것을 '결단력'이니 '자기반성'이니 하는 말로 금칠하겠지만, 10살 이쪽 저쪽의 소년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애마를 베어버리는 것을 두고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어린 김유신의 이 매정함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아마도 나는 그것이 만명부인에게서 온 것이라 생각한다. 또 정치인이었던 아버지도 한몫 했으리라 본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더 이상의 근거는 없다. 그냥 학생과 너무나 똑같은 부모의 모습을 여러 번 보아온 좁견 소견에 비추어 그런게 판단할 뿐이다. 거기서 부모로서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어찌 되었건 이 매정함이 정치인으로서의 성공을 끌어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김유신이 보여준 단호한 결의의 표출은 아무나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자식은 적어도 그 나이에 이렇지 않았으면 한다. 내 아이도 누군가의 나쁜 친구일 수 있다는 부모로서의 겸허한 자세. 내 아이의 많은 부분이 부모로서의 나의 모습을 보고 배운 것이라는 책임감. 이 둘을 나는 「참마斬馬」의 고사를 통해 배웠다. +) 기녀 천관의 메달림은 어찌 보아야 할까? 김유신을 과연 사랑하긴 했을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직업정신의 발로였다고 본다. 천관의 아름다움은 직업인으로서의 아름다움일 뿐.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은 아니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