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웃으며 살 수 있는 87가지 방법] 웃고 살기 위한 방법들
『지구에서 웃으면서 살 수 있는 87가지 방법』, 로버트 풀검 지음, 최정인 옮김, 랜덤하우스, 2009.
연세 지긋한 할머니가 마당에 물을 주고 있었습니다. 꽃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서요. “목말랐지? 시원하게 마셔라.” 그 곁을 지나던 장난 끼 가득한 할아버지가 갑자기 담장 밑에 웅크리고 앉습니다. 그리곤 이렇게 말을 합니다. “오늘 마시는 물은 더 시원한데요.” 깜짝 놀란 할머니는 아주 잠깐의 침묵 끝에 대화를 이어갑니다. “오늘은 날씨가 아주 좋을 것 같구나.” “그렇지요, 할머니. 오늘은 나들이 한 번 하셔야겠는데요.” 한참을 그렇게 이야기하다 일어서서 떠나는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를 향해 웃음을 짓는 할머니. 두 분 다 놀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놀고 놀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바로 로버트 풀검입니다.
로버트 풀검의 『지구에서 웃으면서 살 수 있는 87가지 방법』(랜덤하우스, 2009.)을 읽었습니다. 읽어도 아주 오래 읽었습니다. 책을 잡은 지 거의 보름은 된 것 같습니다. 빨리 읽어치우기로 마음먹었다면 하루 만에도 가능했습니다만, 그렇게 읽을 수 없는 책이었습니다. 저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책 스스로도 자꾸만 그렇게 권하는 듯 하였습니다.
이 책의 표지에는 저자의 사진이 커다랗게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우리의 삶이 허락한 작은 웃음을 즐겨라!”라는 말이 써져 있습니다. 풀검은 KFC 할아버지처럼 생기긴 했는데, 훨씬 더 장난 끼 가득한 모습입니다. “나이 마흔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릅니다. 그 말대로라면 풀검의 얼굴은 분명 그의 삶이 과거에 그리고 현재에 얼마나 즐거웠는지를 선명히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이 책을 통해 로버트 풀검을 처음 알았는데,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로 더 유명한 작가라고 합니다.) 풀검의 사진, 그리고 단 한 줄의 짧은 소개말로 이 책의 정체성은 거의 다 드러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대를 많이 했습니다. ‘웃으면서 살 수 있는 방법이 무려 87가지니, 그 중 몇 개나 건지려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87가지를 다 건지지는 못했습니다만, 꽤나 만족할 만큼의 가짓수를 건졌습니다. “좋은 것은 나누라!” 풀검이 이런 말을 했더군요.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가장 큰 것만 보여드리겠습니다.
고독은 외로움과 똑같은 것이 아니다. 고독은 사람들로 가득 찬 바다에 떠다니는 배 한 척과 같다. 서로의 고독을 존중해 주는 것이 사회적으로 꼭 필요하다. 소로가 『윌든』을 출판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고독을 초월하기 위해서, 혼자 있지만 외롭지 않기 위해서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혼자만 간직하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글로 쓰고 책으로 내서 다른 사람들이 읽게 했다. 내가 이 책을 쓰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나의 삶이라는 작은 배를 여러분과 이야기할 수 있는 거리로 몰고 가는 한 방법이 바로 이 책이다.(18)
책 곳곳에서 풀검의 헛짓(?)을 만날 수 있습니다. 늙은 파리 죽을 때까지 관찰하기, 낯선 사람에게 농담걸기, 벌거벗고 조깅하기……. 풀검의 웃음은 본인이 만들어 낸 것들이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적극적인 노력 끝에 만든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서 이 책이 되었습니다. 위의 인용에서 “나의 삶이라는 작은 배를 여러분과 이야기할 수 있는 거리로 몰고 가는 한 방법이 바로 이 책이다”는 말이 참 근사하지 않습니까? 웃으며 살 수 있는 87가지 방법을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하면 ‘스스로 웃을 거리를 만들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들과 그것을 공유하는 것이지요.
풀검은 정치나 사회에 대한 중대한 문제에는 왜 침묵하느냐는 질문에 이런 대답을 합니다.
“이것은 리그와 영역의 문제이다. 내 마음은 내가 사는 곳, 일상적인 평범한 것 속에서 일을 한다. 여기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내가 자신 있어 하는 분야이다.”(346)
"삶에서 성공했다는 기분은 어디에서 놀아야 할지 아는 데 달려 있다. 어렸을 때부터 키가 작고 통통하고 느린데 월드컵 팀에서 뛰어야지 성공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삶은 실패로 끝날 것이다. … 당신의 능력에 맞는 리그를 골라서 거기서 성공하라. 1세기 그리스 철학자 에피테투스의 말로 하면 “낚시를 잘하면 낚시를 하라. 노래를 잘하면 노래를 하라. 싸움을 잘하면 싸움을 하라. 무엇을 잘하는지 결정하라. 그리고 그것을 해라.”(243)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에 있어 최고의 전문가가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 있게 할 수 있고, 그것을 엮어서 책으로 낼 수 있고, 내어야 한다고 봅니다. 풀검은 자신의 리그를 잘 선택했고, 그 속에서 많은 독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모두가 정치 전문가일 필요도, 사회문제 전문가일 필요는 없지요. 각자 좋아하고 잘하는 분야에서 재미있게 놀며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그것이 우리 모두가 함께 웃으면서 살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요?
지구에서 웃으면서 살 수 있는 87가지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