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꼬맹이와의 협상과 이종 가치 교환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무엇을 위함인가? 이에 대해 나는 끊임없이 생각한다. 얼마 전까지 그에 대한 답은 ‘재미’가 큰 자리를 차지했다. 물론 지금도 ‘재미’가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변함없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 내용이 상당히 달라졌다. 이전의 ‘재미’는 순전히 ‘읽는 재미’였지만, 현재의 ‘재미’는 ‘읽는 재미’와 ‘써 먹는 재미’가 합쳐진 ‘재미’다. 이것은 나의 독서관의 진화라 생각한다.
어제 저녁의 일이다.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 들어서자마자 큰 아들 놈이 “아빠! 한자漢字 마법 놀이하자.”고 졸라댔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민민아, 유치원 다녀와서 손 씻었니?” 곁에서 듣고 계시던 어머니께서는 “마법천자문 보느라고 안 씻었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다시 민민이에게 말했다. “민민아, 손 씻고 오면 아빠가 한자 마법 놀이 신나게 해줄게. 알았지?” 손을 씻으라면 머뭇머뭇 자꾸만 딴 짓을 하던 이 놈이 휑하니 화장실로 달려가 손을 씻고 왔고, 당연히 나와 신나게 한자 마법 놀이를 했다. “타올라라 불 화!” “막아라 막을 방!”
△ 거실 서재: 내 책은 자꾸만 창고로 들어가고, 아이들의 책이 영역을 넓혀간다
퇴근하는 지하철에서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를 읽었다. 지은이는 와튼스쿨에서 최고 인기 있는 교수인 스튜어드 다이아몬드다. 책의 내용을 미루어보건데, 그 이름만큼이나 반짝이는 수업을 하고 있는 듯하다. 써먹을 만한 내용들이 참 많다.
위에서 민민이에게 한 간단한 나의 말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 책의 115p에서 읽은 것을 ‘써 먹은’ 것이다. 해당 내용을 보자.
“보험사 부회장인 데비 시몬니치-로젠펠드는 잠잘 시간을 지키지 않고 속을 썩이는 여덟 살 난 딸 제시카를 다루는 데 애를 먹었다. 제시카는 잠잘 시간이 지났는데도 계속 책을 읽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래서 데비는 잠잘 시간을 한 시간 늦추는 대신 학교에서 짧은 셔츠를 입지 않고, 길에서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러자 제시카는 선뜻 동의했다. 데비에게는 잠잘 시간보다 딸의 몸가짐과 안전이 더 중요했고, 제시카에게는 짧은 셔츠와 자전거보다 책 읽을 자유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115)
위의 내용은 파이를 키우는 방법(잠 잘 시간 지키기+짧은 셔츠 입지 않기+길에서 자전거 타지 않기)과 가치가 다른 대상을 교환하는 방법(잠 잘 시간 지키기 포기, 짧은 셔츠 입지 않기+길에서 자전거 타지 않기 획득)을 보여준 일화다. 무척이나 쓸모 있을 법해서 민민이에게 실험을 해본 것이다. 결과는 이미 말했다시피 성공이었고.
살아간다는 것이 협상과 가치 교환의 연속이라고는 하지만, 5살 된 꼬맹이에게 조건을 걸고 협상을 한다는 것이 과연 옳을까? 혹은 그것이 교육적일까? 이 책은 이런 내 의문에 대한 효과적인 조언을 하고 있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도 중요하다. 작은 일에 집착하지 마라. 반면 안전, 건강, 도덕성, 예의 준법성에 관련된 문제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322)
아무튼 ‘재미’가 또 다른 요소(활용)를 취해 깊어진 듯해서, 독서하는 보람을 느낀다. 아울러 ‘활용’은 독서한 내용을 절대 잊지 않게 해주는 작용도 있으니, 참으로 괜찮은 책읽기의 방법이다. 퇴근하고 우리 아이들과 또 무엇을 협상해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