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떠올린 나의 '홀든 콜필드'

 

 『호밀밭의 파수꾼』,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민음사, 2012년.

 

   전에 동료 교사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선생은 딱 초등학생 수준, 중학교 선생은 중학생 수준, 고등학교 선생은 딱 고등학생 수준으로 생각한다.”

 

   일견 상당히 자조적인 발언이면서도, 환경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저적하는 말이라 생각한다. 고등학교, 그것도 여자고등학교에서 13년을 가르치다보니, 어느새 아이들과 비슷해진 모습에 스스로 가끔씩 깜짝 놀란다.

 

   남성으로서 여성화 된다는 것, 성인으로서 고등학생화 된다는 것. 장점도 있겠지만, 단점도 만만치 않다. 평생을 밥 벌어 먹고 살아야 하기에, 그만 둘 수도 없다. 하지만 여자고등학교라는 환경 때문에 내 정체성을 휘둘리고 싶지도 않다. 여기서 내가 독서에 더 매진해야할 또 하나의 이유가 발생한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었다. 성장소설로 분류되는 작품이다. 『타임』 선정 현대 100대 영문소설. 미국대학위원회 선정 SAT 추천도서. 『뉴스위크』 선정 100대 명저. BBC 선정 꼭 읽어야 할 책. 『옵저버』 선정 인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책. 이상이 이 책에 붙은 타이틀이다. 잘 모르겠다. 그만한 타이틀이 붙을만한 책인지 말이다.

 

   읽고나서 서평을 몇 개 검색해서 읽었다. 남들은 어떻게 느꼈는가 싶어서였다. 서평을 읽고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지독한 성장통’, ‘획일적 교육의 폐해’, ‘한 때 미국 청소년 금서’이자, ‘현재 미국 청소년이 두 번째로 자주 읽는 책’, ‘최근 작가 샐린저 사망’. 그런 내용만 머리에 남았다. 내 마음은 『호밀밭의 파수꾼』에게 이렇게만 외치고 있다. ‘뭐냐? 대체 그 수많은 타이틀은 왜 붙은 거야?’ 아무튼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이나 불러보자. 홀든 콜필드! 이렇게라도 부르지 않으면 주인공 이름도 생각이 안날 것 같아서다.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면 ‘홀든 콜필드’ 같은 학생을 간혹 접하게 된다. 보통 그런 아이들은 '이상한 아이'로 인식되기 일쑤다. 내가 말하는 ‘홀든 콜필드’ 같은 학생은 어떤 아이인가? 책을 좋아하고 열심히 읽지만,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학생을 지칭한다. 그런 학생을 두고 다른 선생들은 뭐라고 말할까? 내 경험상 그 아이들에 대해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냥 관심 밖이다. 얌전은 하니, 사고치는 일은 없고, 공부를 못해서 콜필드처럼 퇴학 당하는 나라도 아니니 말이다. 대한민국의 '홀든 콜필드'는 그냥 교실 구석에 조용히 앉아 퀘퀘한 세상의 내음을 음미하는 학생이라고 할까?

 

   재작년에 그런 학생 하나가 내가 담임으로 있는 반에 있었다. 엄청난 독서량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랐었다. 그리고 그 놈은 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칭찬도 몇 번 쯤 한 것 같다. 어느 날인가, 그놈에게 물었다.

 

“너 하고 싶은 게 뭐냐?”

 

“빵 만들고 싶어요.”

 

“그래, 3학년 되면 직업학교에 제과제빵반이 있다. '제빵왕 김탁구' 때문에 인기가 아주 좋은데, 너 정도면 무리 없이 들어갈 수 있을 거야. 한 번 잘 생각해봐. 모두가 다 공부 잘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 성실하게 하고, 그래서 먹고 살면 그뿐 아니겠냐?“

 

   얼마 후 그놈은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정말로 ‘제과제빵과’에 들어갔다. 작년에 스승의 날이었던가? 제 손으로 만든 빵을 갖고 왔었다.

 

   내가 물었다.

 

   “재미있냐?”

 

   “예.”

 

   “그럼 됐다.”

 

   올 2월에 졸업을 했고, 김해 어딘가에 유명한 ‘제빵사’의 집에 도제식 교육을 받으러 들어갔다고 한다. 여전히 책은 많이 읽고 있을까? 조용히 씩 웃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 놈이 바로 나의 ‘홀든 콜필드’다. 참 이놈은 홀든 콜필드와는 달리, 술·담배는 전혀 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모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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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저자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9-01-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물질적 가치만 내세우는 세상의 비인간성에 염증을 느끼며 반발하는...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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