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로 돌아본 나의 독서
『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 이지성·정회일, 다산라이프, 2012.
작가 이지성을 처음 안 것이 언제였더라? 다행히 감상문을 써놓은 것이 있어 그 날짜를 확인할 수 있었다. 2011년 1월 24일이다. 그의 처녀작 『꿈꾸는 다락방』을 통해서였다. 당시 이런 감상을 썼다. “이 책은 깊이나 잔잔함과는 거리가 멀다. 자극적이고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는 확신에 진지함과 정성을 깃들였다.” 그리고 1년 하고도 3달이 지난 오늘 그의 또 다른 책을 읽었다. 『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였다.
누차 말해왔지만, 내 삶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저자’가 되는 것이다. 때문에 매일 독서를 하고, 적어도 한 달에 한 권 이상의 ‘메타 독서’를 한다. 독서에 관한 책은 이제 어지간히 읽었지만, 또 다른 책을 접할 때마다 신나게 책장을 넘긴다. 『독서 천재 홍대리』를 다 읽는 데는 2시간이 채 안 걸린 것 같다. 『꿈꾸는 다락방』과 거의 비슷한 느낌이다. 허술하고 유치할 수도 있다는 측면도 부정할 수 없다.그러나 저자의 확신에 찬 진지함과 정성 또한 부정할 수 없을 듯하다. 그런 부분을 이제는 이지성의 트레이드 마크로 보아야 할 듯하다.
2,000권을 넘는 책을 읽고도 나아진 것이 없는 삶. 작가 이지성의 20대의 삶이었다. 결국 이지성은 ‘목적이 분명한 독서’를 통해 삶을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시켰다고 한다. 믿을 수밖에 없다. 그 증거가 바로 현재의 이지성이니 말이다. 그래서 이지성은 ‘목적이 분명한 독서’를 강조한다. 영국의 어느 작가가 말한 ‘목적 없는 독서는 산책과 같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발언이다.
이 시점에서 나의 독서를 다시 한 번 돌아본다. 나도 책을 많이 읽기는 했다. 그것도 남들이 들으면 대단하다고 할 정도로. 그러나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목적이 없었다. 세상에 목적 없는 독서가 어디 있겠는가마는, 내 목적이라고 굳이 말하자면 재미였다. 『독서 천재 홍대리』에 의하자면 3단계 중 1단계에 머물렀다.
그런데 2010년 말부터 나의 독서라는 것이 분명한 목적을 갖게 되었다. 나의 책을 출판하겠다는. 그것도 자비로 말고, 출판사의 권유에 의해서 내겠다는. 물론 아직 그 실마리가 보이지는 않지만, 저 깊은 땅 속 어딘가에서 기다란 뿌리를 이미 내리는 과정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독서 천재 홍대리』에 의하자면 3단계 중 2단계 정도에 내 독서가 온 것 같다.
마지막 3단계가 1년 365권 프로젝트인데, 별로 그러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무조건 많이 읽기 위한 프로젝트는 아니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지만, 365권을 읽으려면 무조건 많이 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아무튼 ‘목적이 분명한 독서’ ‘실천하는 독서’ ‘사고의 구조를 바꾸는 독서’라는 저자의 깨달음은 십분 공감하는 바이다. 책 표지에서 말하듯 이 책은 ‘독서 입문서’이니, 책에 어지간히 익숙한 사람이라면 사서 읽을 필요까지는 없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