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사고의 땔감을 수집하는 취미

빈배93 2012. 6. 4. 15:58

   며칠 간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초록을 하나의 파일로 묶었다. 한글 파일로 총 106. 항목별로 585개였다. 1년에 대략 100권씩, 3년에 걸친 독서의 결과물이다. 지난 3년 간의 노력을 보석을 캐는 광부에 비유한면 지나친 자기 포장일까…….

 

   내 초록의 시작은 정약용에게서 비롯되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박석무가 정약용의 서간문을 편역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의 한 구절 때문이었다. 그 내용은 대략 이랬다. “수신에 도움이 되는 글을 초록해서 일정한 편제 아래 묶어라.아비로서 자식에게 하는 잔소리였는데, 그걸 내가 낼름 받아 먹은 것이 시작이었다.

 

   지난 3년간, 300권 남짓한 책을 읽었지만, 어떤 때는 게으름으로, 어떤 때는 부득이함으로, 초록을 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지나고 보니, 사금이 나오는 개울을 몇 백 미터를 건너뛴 느낌이랄까? 이제부터 거르지 않겠다는 다짐은 하지 않는다. 그래본들 거르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니……. 초록한 글들을 하나 하나 읽다보니 이런 글이 눈에 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촌철살인의 표현들을 너무도 좋아하고, 또 모아 놓고 있지. 나비 수집가나 우표 수집가들이 그러하듯이. 멋진 문장들은 나의 마약이야. 절절하게 배열된 대여섯 개의 단어에는 수개월 간의 경험이 압축되어 있어. (베르나르 베르베르,카산드라의 거울 1, 244)

 

   그러고 보니 내가 초록에 집착하게 된 데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영향도 무시 못 한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때문이다. 이 책이 초록의 결정체임과 베르베르의 창작의 원자재인 것으로 파악한다. 정약용의 편지글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같은 크기로 내게 자극을 주었던 것 같다. 사흘 전에는 이런 글도 읽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사고의 땔감을 주워 오고, 그것을 태워 열량을 얻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책을 쓰는 사람은 늘 책을 가까이 하는 독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어떤 의미에서 그건 사회 환원과 같은 것입니다. (장정일,빌린 책/산 책/버린 책, 16)

 

   나 자신을 여름 내도록 부지런히 일해서 집안 가득 땔감을 모아둔 개미에 비유한다면 적절할까그 땔감들을 잘 태우고 싶다. 사실 땔감이 풍족치도 못하기에, 주워와서 때고, 주워와서 때는 일이 반복되어야 하겠지만……. 아무튼 이렇게 무의미한 일상에 작은 유의미함을 만드는 일로, 나는 나의 초록이라는 행위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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