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사가 되어 세상을 내 마음대로
<글은 빈배가 썼고, 그림은 빈배의 제자 신소영 양이 그렸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이었던가. 유리겔라라는 세계적인 마술사에 온국민이 열광했었다. 집집마다 TV를 틀어서 방송을 보며 손에는 숟가락을 들고 유리겔라와 함께 기합을 넣었다. 다음 날 등교해보니 "정말로 숟가락이 구부러졌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도 빈번히 들렸다. 만리장성을 넘어가는 마법은 또 어떠했는가? 훗날 사기극이었다는 보도를 얼핏 본 기억이 있지만,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에게 유리겔라는 여전히 꿈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의 대명사이다.
오늘도 여전히 마술사로 불리는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다. 불꽃이 일어나고 연기가 사라지면 손에 장미가 쥐어져 있다. 그 장미를 한쪽 무릎을 꿇은 체 어여쁜 숙녀에게 바치는 모습은 언제나 낭만적이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마술이란 잘 짜여진 연극이라 생각하지만, 없던 것을 있게 만들고,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마술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관객은 마술을 통해 잠시 혹은 오랫동안 잊었던 꿈과 희망을 떠올리며 행복해 한다. 간혹 눈에 쌍심지를 켜고 마술사의 속임수를 찾으려는 사람이 있다. 속임수를 찾아서 마법사를 망신시키면, 자신의 위신이 올라간다고 생각해서일까? 그렇게 해서 다른 관객들의 꿈과 희망을 산통 깨어버리면, 본인은 행복할까?
보통 마술사의 마술은 물질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마법이 아닌 마술로 불린다고 생각된다. 그 보다 수준 높은 마술은 당연히 정신의 영역에 관한 것이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마술이 아닌 마법으로 불려야 마땅하다. 내 아내와 아이와 동료들의 마음이, 내 작은 희생과 세심한 배려로 따뜻해진다면, 그 보다 더한 마법이 어디에 있겠는가? 나는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통해 이런 생각들을 배웠다.
연금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