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

산문에서 군더더기를 덜어내니 시의 모양이더라

빈배93 2012. 9. 13. 14:34

#52 시인

시인 추방론까지는 아니더라도,

시 나부랭이는 쓰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산문 스타일이라 생각했다.

 

쓸 말은 한 줄도 안 되는데,

길어야 있어 보인다는 생각에,

글은 자꾸만 길어졌고,

글이 길어지는 만큼,

괴로움도 커져갔다.

 

처음 글을 쓸 때는,

아예 능력이 없어 글이 짧았고,

티끌만한 능력이 생겼을 때는,

글이 무한정 길어졌고,

이제는 생각 없는 긴 글이 부끄러워서,

글이 짧아졌다.

그 포물선을 그리는 시간이

2년이었다.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은

지금도 별로 없다.

그런데, 써놓고 보니,

시를 닮았다.

시도 아닌 것이,

시를 닮았다.

 

이제는 알겠다.

산문에서,

군더더기를 덜어내면,

그게 바로 시라는 사실을.

그렇게 나는 2년을,

시인의 길을 달려온 것이다.

시인도 못 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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