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로 코엘료,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역시 나쁘지 않았다. 서평의 형식을 갖추어 쓰려는 마음 없이, 그냥 내 마음에 내려 앉은 이야기를 몇자 끄적이다보니 1,000자가 넘었다. 그 이야기를 해보자.
삶이 너무나 뻔했다. 베로니카는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한다. 운 나쁘게(?) 구명을 받은 베로니카는 정신병자 수용소인 빌레트에 강제 입원을 당한다. 의식을 찾은 그녀에게 들려온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전자는 자살에 실패해서 살았다는 것. 후자는 갑작스런 심장의 손상으로 일주일 밖에 살 수 없다는 것. 그때부터 베로니카는 ‘자신의 삶’을 살아보기를 강력히 소망한다. ‘삶이 너무나 뻔하다’는 생각은 저 멀리 가버렸다. 빌레트의 의사, 환자들과 대화할수록 그녀의 소망은 더욱 강렬해진다. ‘죽기 전에 진짜 내 삶을 살아보고 싶어!’ 결국 베로니카는 빌레트에서 사랑을 하게 된 에뒤아르와 병원을 탈출한다. 병원장 이고르 박사는 그들의 탈출 소식을 듣는다. 그러나 자신의 연구 논문을 완성하는 데만 몰두한다. 논문의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베로니카에게 페노탈이라는 약을 투여해서, 심장발작 효과를 가장하는 데 성공했다. 일주일 내내 그녀는 그 약이 든 주사를 맞았다. 그녀는 몹시 두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돌이켜볼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빌레트의 많은 환자들도 그녀를 보며 돌이킬 수 없는 느린 죽음을 자각했고,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들은 그들이 잃어가고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해야만 했고, 그들 자신의 삶을 다시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험은 성공적이었고, ‘죽음에 대한 자각은 우리를 더 치열하게 살도록 자극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순신 장군은 “죽기를 생각하면 살 것이요, 살기를 생각하면 죽을 것”이라 했다. 병사로서 전장에 나아가는 용맹한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지만, 우리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이 될 것이다. 사는 것이 전쟁이라고 하질 않는가? 곧 죽을 것인데, 무슨 눈치를 볼 것이며, 무엇을 억누르겠는가? 우리는 대부분, 생의 마지막 시점에 누릴 안락함에 초점을 두고, 평생을 남의 눈치를 보며, 스스로를 억누르며 산다. 그것이 미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죽음에 대한 자각은, 미친 세상에서, 제대로 미친 삶을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고흐·헤밍웨이·원효·법정. 그들이 그렇게 제대로 미쳤던 사람이 아니었던가?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