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학교. 2013.03.12.(교무실에서 식당으로 가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길이 아닌, 길 그 자체의 길로 인식할 때 걷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이근삼은 그의 희곡『원고지』에서 현대인들의 나날이 반복되는 기계적인 삶을 풍자하였다. 『원고지』 속의 삼년 전 신문에 실린 기사와, 삼년 후에 실린 기사가 하나도 다른 것이 없던 것처럼, 우리 삶도 어쩌면 그렇다.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삶은 타파해야할 현실이면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다. 사실, 반복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문제는 기계적인 반복에 있는 것이지. 오히려 인간에게 반복은 필요하다. 반복은 인간에게 안정감을 준다. 매일 매일 새로운 상황에 놓인다면 우리의 뇌는 미지의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긴장하다 못해 미쳐 버릴지도 모른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은 반복과 새로움의 적당한 비율에 달려 있다. 그 비율은 분명 사람마다 다를 것이니,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비율을 알고자 하는 바램은, 욕심이나 몰상식의 소산이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일상으로의 여행을 이야기했다. 굳이 먼 곳을 찾아갈 필요없이, 일상의 공간에 관심을 갖고서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보고도 보지 못했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 훌륭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요지였다. 심불재언心不在焉이면 시이불견視而不見이요 청이불문聽而不聞이라고 했던가? 드 보통의 '일상으로의 여행'을 위해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마음이 거기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매일 지나왔던 길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는 통로이기만 했다. 이제는 그 길 자체를 도구가 아닌 목적으로 삼는다면, 그래서 그 길이 우리의 볼거리가 된다면 '일상으로의 여행'은 비로소 시작된다.
목적이 주도하는 삶에서는 목적 아닌 모든 것이 수단이 된다. 목적만 존재하는 곳에서 수단은 보이지 않는다. 목적은 우리 의식의 감옥이 되는 것이다. 걷고, 숨쉬고,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무언가의 목적이 아니고, 그 자체 하나하나가 목적인 삶. 그런 삶이야말로 '일상으로의 여행'을 즐기는 삶이요, 기계적인 반복으로부터 벗어나는 해방구이다. 점심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바삐 가던 길에 어느샌가 피어난 매화가 눈에 들었다. 매화는 "이 길은 교무실에서 식당가는 길이 아니에요. 이 길을 길 자체로 바라보세요. 그럼 '일상으로의 여행'이 시작되는 거에요."라고 말하는 듯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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