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문학기행 # 5
구중궁궐에서 나고 자라다
제 나이 열 셋에 반가에 시집을 갔더랍니다.
서방님의 훤칠하고 늠름한 모습이
어찌 그리 믿음직스럽던지.
서방님의 어눌한 말투와 부끄러운 미소가
어찌 그리 푸근하던지.
모든 것이 뜻대로 마음대로였던 어느날
덜커덕하고 서방님이 떠나셨습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셨습니다.
서방님 없는 세상
살 수가 없어 죽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말리시더군요.
그래서 따졌습니다.
"조선의 법도가 그러하지 않습니까?"
"그 법도를 권장하는 정점에
계신 분이 아버지가 아니십니까?"
아버지는 그냥 "안 된다"고
하시며 돌아서셨습니다.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안 된다"는 말씀 앞에
'내 자식만은'이라는 말을
차마 붙일 수 없으셨다는 것을.
내리 열나흘을 굶고서야
서방님과 나란히 누울 수 있었답니다.
이제는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겁니다.
- 화순옹주홍문을 보고서 -
* 화순옹주는 영조의 둘째 딸로 추사의 증조할머니이다. 화순옹주는 남편 김한신이 39세의 나이로 죽자, 14일을 굶어 남편의 뒤를 따랐다. 영조는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음은 불효라 하여 끝내 열녀문을 내리지 않았고, 후에 정조가 열녀문을 내렸다. 화순옹주는 조선 왕실에서 나온 유일한, 그러니까 수 만을 헤아리는 역대 왕녀 중에서 단 하나뿐인, 열녀이다.
@ 화순옹주홍문和順翁主紅門(2013.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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