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무섭게 몰아친 다음날, 등산어플 하나에 의지해 겁도 없이 금정산 종주길에 나섰어. 다방봉~장군봉~갑오봉~고당봉~대천천~화명강변공원~호포로 이어지는 30km를 걸었지. 원래는 만덕고개를 넘어서 백양산까지 가려고 했는데, 해가 지기 전에 어려울 것 같아서 대천천으로 빠졌어. 장군봉에서 갑오봉 가는 길에 있는 장군평전과 고당봉의 엄청난 바람과 운무가 인상적이었어. 식사는 점심으로 국수에 막걸리. 평소 30km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걸었는데, 확실히 비 온 뒤의 산은 사람을 기진맥진하게 만들더라.
호포에서 양산천으로 빠지는 중이었어. 해는 거의 다 져서 어둑어둑해젔지. 자전거 전용 다리를 건너 아래쪽으로 우회하면 양산천 둑길이 나오는데, 아뿔사 강물이 범람해서 길이 없어진 거야. 무섭더라. 거기서 비가 갑자기 내리기라도 한다면 순식간에 휩쓰려 갈 것 같은 공포가 일더라. 할 수 없이 호포역으로 가서 지하철을 탔지. 평소라면 지겨운 지하철이었겠지만, 몸과 마음이 얼마나 편안하던지.
한 달 전 쯤에 수동 킥보드를 사고 나서 참 많이도 다녔어. 어떨 때는 킥보드를 타고 어떨 때는 자전거를 타고 또 어떨 때는 걸어서 하루에 30km에서 60km나 되는 길을 갔지. 오로지 멀리 가기 위한 여행은 뭔가 허전해. 이제는 뭔가 조금 변화를 줘야 할 때 같아. 그래서 이것 저것 찾아보면서 고민을 했지. 지금 생각하는 것이, 주 이동수단으로 수동킥보드를 사용하자, 대중교통을 적절히 이용해서 늘 다니던 길은 그냥 점프하자, 휴식과 보급과 공부를 위해서 박물관에서 박물관으로 이어지는 박물관 투어를 하자, 하루 최대 40km 정도만 가자, 부지런히 사진을 찍자, 하루의 여행을 글로 꼼꼼히 남기자, 숙박은 자제하고 주말을 이용한 당일치기의 여행을 하자,는 생각을 했어. 이번 주말에는 남파랑길 6코스와 7코스를 를 가보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