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함께 하는 문화유산 상식여행』, 오주환, 북허브, 2011.
살다보면 단체로 여행을 갈 일이 종종 있다. 여행지는 보통 오랜 시간에 걸쳐 검증된 명소들이기에, 즐거움을 얻을 확률이 높다. 같은 장소, 같은 일정의 여행이지만, 여행자의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물론 여행자의 반응이 모두 한결같기를 바라는 것도 무리지만, “여기에 뭐 하러 왔느냐”라든지, “볼 것 없으니 빨리 가자”는 류의 말을 듣게 되면 순간적으로 짜증이 인다.
작년 겨울에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무주로 교직원 연수를 다녀왔다. 명목이 연수지만 여행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듯싶다. 당시 ‘무주 머루동굴’이란 곳을 가게 되었는데, 역시나 즐거운 여행을 초치는 그런 말을 들었다. 그 중 백미(?)는 “숙소에 바로 가면, 너무 이르니까 그냥 일정에 넣은 거지.”라는 말이었다. 맙소사! 장담하건데, 그 분은 에펠탑에 가면, “그냥 철탑이네. 이런 것은 우리 집 뒷산에도 있어.”라고 말할 것이다. 여행지에서 “재미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을 비방하자는 것이 아니다.(솔직히 비방을 하고 싶긴 하다.) ‘어떻게 하면 더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을까?’는 즐거운 삶을 지향하는 나에게 언제나 중요한 화두이다.
지난 봄, 문화유산 해설사인 박상용의 『절에서 만나는 우리문화』라는 책을 읽었었다. 저자의 저술 의도는 ‘우리 문화유산을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는 것이었다. 소재가 사찰에 한정되어있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이번에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굴한(?) 『부모와 함께 하는 문화유산 상식여행』은 사찰뿐만 아니라, 성곽, 목조건물, 석조건축, 고분까지 거의 모든 것을 망라하였다. 게다가 적당히 쉽게 쓰여져 있다.(아주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전공이 한문학이라 답사 붐이 일어나기 전부터 전문적으로 문화유산 답사를 다녔다. 답사를 가기 1달 정도 전부터 답사와 관련된 세미나를 준비하고, 관련 서적을 읽었다. 세미나를 통해 주제 발표와 토론을 하고, 교수님들의 조언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답사를 가서 문화유산 앞에 놓여 있는 안내판을 보면 도무지 알 수 없는 말들 뿐이었다. 개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건 답사객의 잘못이 아니다. 잘못은 지극히 이기적인 안내판에 있을 뿐이다. 나름 전문가임에도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생경한 용어들의 나열! 언젠가 저놈의 안내판을 초등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게 싹 뜯어 고쳐야겠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저자 오주환은 역사학과를 나와서 신문사와 잡지사에서 여행 전문기자로 일을 하였다. 저자는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이 책을 저술하였을까? 조금 길지만 서문에 나온 내용을 인용해보자
“여행을 통해서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선뜻 실행에 옮기기가 쉽지 않다. 다소의 준비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준비가 없으면 소득을 얻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반면 하나를 더 알면 알수록 그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는 게 역사여행이다. 글을 쓰는 동안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은 한 가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역사 여행, 스스로 문화유산을 볼 수 있는 안목’이다. 오랜 시간을 두고 공부를 해온 게 아니라면 나만의 식견을 가질 수가 없다. 특정 전문가에 의해 규정되어 버린 이미지와 느낌이 내 것인 양 착각할 수도 있다. 책을 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로운 여행을 원하는 사람, 역사여행을 다니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사람, 역사여행을 해봤지만 기초가 약해 늘 어렵게 느끼는 사람 등을 위해 스스로 우리 문화유산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주자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어디를 여행하던, 우리는 문화유산을 반드시 만나게 된다. 조금이라도 알면 스쳐가는 인연이 아닌 소중한 인연이 되기 마련이다. 불교유산, 목조건축물, 성곽, 석조건축물, 고분에 이르기까지, 사랑하고 싶다면 공부하자. 그것도 쉽고 재미있게. 그러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 책의 장점을 잠시 나열하자. 이 책에는 수많은 문화유산 사진이 나온다. 그 아래의 친절한 해설과 함께 사진을 보는 재미가 좋다. 책의 말미에는 우리나라의 국보 1호부터 1274호까지의 목록이 주소와 함께 실려 있다. 잘 활용하면 더 훌륭한 여행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꼭 하고 싶은 말 한 마디만 더 하자. 제대로 된 여행을 하려면 블로그를 하라! 자연스레 사진을 찍게 된다. 포스팅을 하려면 팸플릿을 챙기게 된다. 사진을 찍고 팸플렛을 챙기다보면 주변을 자세히 관찰하게 된다. 포스팅을 하다 보면 뭔가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 다음 여행에서는 사전 조사를 하게 된다. 여행을 위한 준비부터 여행 후의 되새김질까지. 완벽하지 않은가? 내 개인적으로는 여기에다 여행지와 관련된 문학작품을 미리 읽고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얹어본다. ‘블로그-여행-사진-글쓰기-독서’의 선순환 구조! 현재까지 내가 정립한 "Enjoy tour"의 최종판이다. 당장이라도 카메라 들고 가방 메고 여행을 떠나고 싶다. 여행을 사랑하는 자, 인간을 사랑하게 되리라!
* 여행을 좋아하고, 우리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지면 누구나 훌륭한 답사여행자가 될 수 있다. 마치 퍼즐을 맞추듯 내가 아는 지식을 하나씩 여행지에서 적용시키다 보면 어느새 이 땅의 역사와 문화유산에 애정을 갖게 된다.(10)
* 불교는 삼국시대 이래로 우리의 정신문화 속에 깊숙이 자리해 왔다. 불교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 문화유산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극락에 대한 염원은 두터운 신앙심으로 이어져 곳곳에 절이 세워졌고, 신앙은 뜨거운 예술혼으로 표출되어 전국에 불상, 불탑, 불전 등에 표현되었다.(24)
* 우리나라의 문화적 특성과 문화유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불교문화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불교가 1,500년 이상 우리 정신문화 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국보 가운데 불교문화유산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문화를 알기 위해서는 가장 근본이 되는 절에 대해서 이해해야 한다. 절은 불교문화의 보물창고다.(26)
* 석가모니는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나서 한 손은 하늘을, 한 손을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중략) 유아독존에서 ‘아’는 석가모니뿐만이 아니라 개개의 모든 사람이 지닌 불성을 가리킨다. 불성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며, 인간은 누구나 불성을 갖춘 존재임을 선언한 것이다.(74)
* 등에 불을 밝히는 것은 어둠과 번뇌를 물리치고 영원한 진리의 광명을 밝힌다는 의미다. 등을 밝힘으로 어두운 마음이 부처의 지혜처럼 밝아지고 따뜻한 마음이 온 세상에 퍼져 부처의 자비가 충만해진다고 한다.(123)
* 자연을 지배하지 않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더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내는 것이 선조들이 생각한 건축물이다.(155)
* 한국 건축의 특징은 자연을 위압하지 않고 지세에 순응하여 서로 보완작용을 하는 것이다. 자연의 부족함을 채워줌으로써 자연을 한층 더 아름답게 하는 것이 전통적인 건축이 추구하는 이상이다.(159)
* 우리 조상들은 곧으면 곧은 대로, 휘어지면 휘어진 대로 목재의 모습 그대로를 활용해 건물을 짓는 지혜를 선보였다. 구부러진 나무를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직선이 지닌 단조로움을 피하고 곡선을 아름답게 사용하였다.(159)
* 지붕의 처마가 깊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건물을 짓는데 사용되는 목재가 습기에 약하기 때문이다. 빗물이 지붕에서 떨어질 때 건물에 튀지 않도록 하는 일이 매우 중요해서 처마를 깊게 하였다. 햇빛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이유의 하나다. 계절별로 해가 떠서 절까지의 태양의 각도를 계산해 여름철에는 처마가 햇빛을 막는 차양막 역할을 하고, 겨울철에는 낮게 뜬 해가 방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처마의 깊이를 고려한다.(194)
[절개 높다 소리 마오 벌거벗은 배비장], 고고한 척 하지 마라 (0) | 2011.09.29 |
---|---|
[시 읽는 기쁨 3], 블로그 비평가를 꿈꾸다 (0) | 2011.09.27 |
[이원복 교수의 세상만사 유럽만사], 읽고도 기억나는 게 없다 (0) | 2011.09.24 |
[모든 것에 따뜻함이 숨어 있다], 고 박완서를 추모하며 (0) | 2011.09.23 |
[나는, 꼭 행복해야 하는가] 자극의 범람을 피하는 삶 (0) | 2011.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