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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좀 못해도 생각이 깊은 아이가 되었으면

잡동사니

by 빈배93 2011. 12. 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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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민아, 우야! 처음으로 너희들에게 편지를 쓴다. 지금 아빠가 하는 말은 너희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아빠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단다. 이렇게 너희들의 이름을 부르며 편지의 형식으로 쓰는 것은 이유가 있다. 너희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쓰는 글이라면 아빠의 허위와 가식을 벗겨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말이 어렵지? 아직은 너희들이 이 글을 읽을 수는 없겠지만, 조금만 더 커서 읽는다면 이해가 될 수 있게 쓰려 한다. 정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아빠가 큰 일을 하나 거의 완성해간다. 그게 뭐냐면 김훈이라는 분이 쓴 『자전거여행』이란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다 베껴 쓴 거다. 327쪽의 책인데 지금 311쪽을 베껴쓰고 있으니 '거의 다'란 말을 써도 되겠지? 사실 너희 엄마는 과장된 말을 무지 싫어해서 아빠가 이런 말을 쓸려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란다.

 

    아빠가 이렇게 책 한권을 통째로 다 베끼게 된 것은 엄마 때문이란다. 엄마랑 아빠가 함께 출근하던 차 안에서 엄마가 아빠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어. "조정래 집안의 며느리들은 『태백산맥』10권을 다 베껴썼다고 하더라구……." 엄마가 그 말을 한 것은 아빠가 그 몇 일 전부터 책을 베끼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였단다. 엄마 말에 아빠는 좀 자극을 받았고, 어쩌면 그 덕분에 이렇게 끝장을 볼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근 1달 동안 아빠는 학교에 출근해서, 제일 먼저하는 일이 『자전거여행』을 1쪽이라도 베끼는 것이었단다. 처음에는 연필 쥐는 손가락이 어찌나 아프던지. 책 한 권을 다 쓴 지금도 물론 덜 아픈 것은 아니다만, 매도 맞아 본 사람이 잘 맞는다고, 이제는 그냥 참을 만 하다.

 

    책상에 조용히 않아서 연필로 글을 쓰다보면, '이런 게 도道 닦는 심정이 아닐까'하는 마음이 자주 일어났다. 그래서 화나거나 불쾌한 일이 있으면 거의 습관적으로 글을 쓰게 되었단다. 글을 쓰려면 자연히 집중을 하게 되고, 말을 하지 않게 되니, 그게 도 닦는 것과 그리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더라구.

 

    책을 이렇게 읽어보니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는 것 같더라. 정말로 천천히 조금 밖에 읽을 수 없다는 것이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더란 말이지.  베껴 쓰면 적어도 3번 정도는 책을 봐야해. 그러다보니 김훈이란 작가의 글을 반복해서 찬찬히 음미하며 읽을 수 밖에 없더라구. 전에 아빠가 김훈의 다른 책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읽다가 포기를 했었어. 무슨 말이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지……. 그래서 김훈의 책은 다시는 읽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지금은 김훈의 또 다른 책을 읽고 싶어졌어. 아빠가 너무 이랬다가 저랬다가 한다고 나무라지 마라^^ 아빠는 그것이 발전했고 성장했다는 증거라고 생각하니.

 

    다음에 베낄 책은 진작에 정해 두었다. 신영복 선생의 『나무야 나무야』를 써 보려구. 이 책은 아빠기 이미 두 번이나 읽은 책이란다. 세 번 째 읽어도 충분히 좋은 책일거야. 김훈 아저씨의 글은 너무 날카롭거든, 그래서 조화를 위해서 아빠가 아는 한 가장 부드럽고 겸손한 작가인 신영복 선생의 책을 베끼기로 마음 먹은 거야. 

 

    민민이와 우야도 좀 더 크고 글씨를 쓸 수 있게 되면 좋은 책을 베껴 쓰게 할 작정이다. 겁나지? 흐흐. 하지만 너무 겁먹지 마라. 매일 10분씩만 쓰게 할 거니까 그리 힘들진 않을거야. 혹 너희들이 더 쓰겠다고 떼를 쓸지도 모르겠다. 그럼 아빠는 못이기는 척 하고 져줄 생각이야. 아빠와 엄마는 너희들이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로 자라나길 바란다. 공부는 좀 못해도 깊이 있는 생각을 할 줄 아는 아이들 말이야. 어쩜 너희 엄마는 이런 아빠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엄마 아빠 없는 동안 할머니 할아버지 말씀 잘 듣고 싸우지 말고 즐겁게 지내라. 퇴근하고 빨리 가서 놀아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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