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9일 연수 첫 날
#1
부산교대 미술관에 연수 시작 3분 전에 도착했다.
강의실 문을 드르륵 열었다.
윽! 나만 남자다.
심지어 선생님 두 분까지 모두 여자다.
남자니까 반장 하랜다.
그래서 난데없는 반장까지 되었다.
결론적으로 한 건 아무 것도 없지만…….
#2
닥종이 인형 하나 만드는 데 최소 열흘은 걸린다고 한다.
히터라는 문명의 힘을 빌어 우리는 5일 만에 완성할 거라고 한다.
조경순 선생님 왈,
"인형 말리는 냄새가 구수해요."
조선생님의 말씀 하나하나가 더 구수했다.
#3
오전 내도록 뒤통수만 만들었다.
이만한 정성이 들어가는지 내 미처 몰랐다.
무슨 팔만대장경의 경판을 새기는 기분이다.
1월 10일 연수 둘째 날
#4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왔다.
속도계로 찍어보니 4.28km였다.
지하철보다 10분 빨랐다.
날이 많이 춥다.
보충도 못하는데 차비라도 굳히는거지, 뭐……흐흐.
#5
만들어 놓은 머리통과 몸통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어휴∼이게 사람이 되려나……'
#6
조선생님 왈,
"나중에 인형 다 만들고 보면, 다들 만든 분과 닮아 있어요. 참 신기하죠!"
서예에서 '글은 그 사람의 인격을 드러낸다'고 하는데, 닥종이 인형도 그렇다.
하기야 둘다 '예藝'니 그럴만하다.
내 인형은 날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기야 내 딸이 날 닮았으니, 날 닮던 딸래미를 닮던 그게 그거지만.
1월 11일 연수 셋째 날
#7
연수에 온 선생님들 마다 투덜댄다.
"난 쉬는 시간 없는 연수 처음 봤네."
허정임 교수님이 들어와 제발 쉬어가며 하시란다.
아무도 말을 듣지 않는다.흐흐.
#8
중간 중간에 손 씻을 일이 잦다.
우∼쉬!
우리학교도 온수 나오는데, 명색이 대학교가 이게 뭐냐.
11월 12일 연수 넷째 날
#9
끝이 보인다.
옷까지 입히고 보니 그럴 듯하다.
조경순 선생님이 엄청 고생하신다.
그런데 인상 한 번 쓰시질 않는다.
닥종이 인형 만들다가 도통한 것이 틀림없다.
#10
인형 만들며 이런 생각을 했다.
'닥종이 인형 만드는 일에 비하면 글쓰는 일은 아무것도 아녀.'
'글 한 편 쓰는데 '기껏해야' 두세 시간인데…….'
저녁에 집에 와서 편하게 글을 썼다.
힘들게 느껴지던 글쓰기 이젠 쉽게 느껴진다.
아마 이번 연수에서 얻은 최고의 깨달음일 것 같다.
11월 13일 연수 다섯째 날
# 11
반장인데 한 게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사진이나 찍어 드리자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집에서 카메라를 들다 실수로 떨어뜨렸다.
와장창!
젠장, 렌즈 유리가 깨졌다.
그래도 기여코 가져가서 혼자만의 임무를 완수했다.
다행히 렌즈 유리 교환비는 생각보다 저렴했다.
11,000원이었다.
#12
표창장을 받았다.
반장이라고.
한 것도 없는데, 부끄럽다.
난 사립이라 필요도 없는데, 필요한 분에게 양도할 걸 그랬나…….
#12
이제 조금 낯이 익어지나 싶었는데, 끝이다.
원래 사는게 그런거지 뭐…….
선생님들 모두 행복하시유^^
마무리
#13
목공예는 깍아나간다.
닥종이 공예는 붙여나간다.
목공예가 소멸의 방향을 취해 반생명적이라면,
닥종이공예는 생성의 방향을 취해 생명적이다.
넘치는 부분을 잘라내는 목공예가 비정한 정치를 닮아 있다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가며 그 모든 것을 끝내 아울러가는 닥종이 공예는 따뜻한 인간미와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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