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과 저는 자가용 1대로 함께 출퇴근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어제 집사람이 제게 이런 말을 해주더군요.
“교감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 '큰 잘못을 한 사람은,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니, 화낼 필요가 없고, 작은 잘못을 한 사람은, 작은 잘못이니, 화낼 필요가 없다. 그러니 화낼 일이 별로 없다'고 말씀하시더라고.“
순간, ‘그 말 참 그럴 듯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뭔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 허전함은 어디서 왔을까요? 저는 두 가지 측면에서 그 원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살면서 화를 전혀 내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인가?’ ‘큰 잘못을 한 사람이 반드시 자신의 잘못을 아는가?’ 위의 두 물음에 대한 답은 둘 다 ‘NO!’라고 생각합니다.
‘불의不義’에 맞서서 목숨까지 기꺼이 내놓았던 수많은 분들을 생각해볼 때, 화를 전혀 내지 않는 것이 좋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을 괴롭히고도 여전히 잘 사는 ‘분’들을 생각해 볼 때, 큰 잘못을 한 사람이 반드시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다고도, 큰 잘못을 큰 잘못으로 알고 있다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허전할 수 밖에요. 라퐁텐의 우화집에 보면, '나쁜 놈은 꼭 있으니, 멀리 해야한다'는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나쁜 놈을 보고 화내지 않는 것은 분명 잘못이고 비겁함입니다.
살다보면 화나는 일이 참 많습니다. 그 중 상당수는 화내지 않아도 될 일이지요. 신경질적인 본인의 기질에서 비롯되는 '화'가 거의 대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런 점에 비추어서 교감 선생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기쁘고’ ‘화나고’ ‘슬프고’ ‘두렵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하고 싶은’ 칠정七情을 죽여서는 안 됩니다. 감정을 죽여 버리면 산사람이 아니질 않겠습니까? 사소한 일에는 곧잘 화를 내면서, 정말로 ‘불의不義’한 일에는 입을 다물고 있지는 않은가 하고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연전에 ‘감정’을 슬기롭게 다스리는 법을 설파한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의 [생각 버리기 연습]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서평까지 썼음에도 그 좋았던 내용이 가물가물합니다. '실천을 통해 나아가는 독서가 최선'이라는 말에 심히 공감이 가는 요즘입니다.('어떤 내용을 실천하게 되면 절대 잊어버릴 일이 없다'는 말로 저는 이해합니다.) 다시 이 책을 끄집어내어 읽고 있습니다.
+) 최근 집사람에게 짜증이 잦았습니다. 교감선생님의 그 말씀을 듣고는, 가슴에 새겼습니다. 요 몇 일간 집사람에게 거의 짜증을 내지 않았습니다. 작년 이맘때 [생각버리기 연습]을 읽을 때도 감정조절이 잘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런 말과 이런 생각들은 자주 자주 읽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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