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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고 사니?(6)

잡동사니

by 빈배93 2012. 9. 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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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잡초

흙을 밟으며 살다의 한 대목. <올 이른 봄에 겪었던 잡초사건이 기억난다. 마늘밭을 온통 풀밭으로 바꾸어놓은 그 괘씸한 잡초들을 죄다 뽑아 던져 썩혀버린 뒤에야 그 풀들이 잡초가 아니라 별꽃나물과 광대나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정갈하게 거두어서 나물도 무쳐 먹고 효소 식품으로 바꾸어도 좋을 만한 약이 되는 풀들을, 내 손으로 그 씨앗을 뿌리지 않았는데도 돋아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적대시하여 죄다 수고롭게 땀을 흘려가며 뽑아버렸으니 어리석기도 하지.> 출근길에 집사람에게 10년 안에 시골집 조그만 것 하나 사서, 마당에 채소도 기르고, 목공예 할 장소도 마련해서 뭔가를 뚝딱거리고, 틈틈이 글도 쓰면서, 주말이면 거기서 그렇게 지내고 싶다고 했더니, 웬걸, 흔쾌히 그러자고 허락해주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글공부도 부지런히 해야겠고, 목공예도 배워야겠고, 풀에 대한 공부도 해야겠고, 그 풀로 효소 담그는 것도 배워야겠고, 나물 무치는 것도 배워야하는데……. 배워야 할 것과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배워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10년도 준비기간으로 길지 않은 시간이란 생각이다.

 

#22 항아리

다시『흙을 밟으며 살다의 한 대목. <처음 항아리가 100개로 늘어나고 200개로 늘어날 때는 이제 그만 모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 많은 항아리를 모아 어디에 쓰랴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모아놓고 보니 하나둘 쓸모가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 농사지으러 변산에 들어오면서부터 길러내는 모든 농작물에 제초제나 농약을 쓰지 않고 화학비료도 주지 않기로 결심하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던 터라, 돋아나는 풀들과 악전고투를 하면서 길러낸 농장물이 이파리 하나 뿌리 하나에 땀이 배어 아깝지 않은 것이 없었다. 고구마 넝쿨을 걷어 효소를 담고, 시장에 내다 팔 수 없는 조그마한 감들을 따서 식초를 담고, 바랭이와 싸우면서 길러낸 고춧대에 매달린 끝물 고추를 따 염장해서 고추김치를 담고, 가뭄이 들어 제대로 여물지 못한 콩을 추수하다 떨어진 콩 한 톨까지 모아 간장과 고추장을 담고……. 이러다 보니 빈 항아리가 하나씩 둘씩 채워져 어느새 항아리 100여 개 가까이 가득하게 되었다. 이래저래 우리가 지은 농사에서 생기는 1차 생산품들을 가공해서 부가가치를 높일 궁리를 해야 하는데 올해는 남은 항아리에 몸에 이로운 산야초들을 채집하여 효소와 술도 담고, 콩 농사도 더 부지런히 지어 간장과 된장도 더 담고, 가까운 바다에서 나는 고기들 가운데 사람들이 거들떠보지 않아서 값이 안 나가는 고기들을 항아리에 담아 그늘지고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곳에 오래오래 위생적으로 보관하면서 곱게 삭여 맛있는 젓갈도 만들려고 한다.> 책을 읽으려면 책장부터 사라고 했다. 온갖 장과 효소와 젓갈을 얻으려면 장독부터 구할 일이다. 하나도 버릴 것 없는 변산 공동체의 삶이 아름답다. 10년 뒤에 시골집을 하나 사기로 마음 먹었다. 그 집에서 장과 효소와 젓갈들을 그렇게 담고 싶다. 항아리 가득한 그것들을 지인들에게 나누어줄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푸근해진다. 단, 장독은 작은 것으로 장만하고 싶다. 장독이 크면 욕심도 그만큼 커져서 게으른 행복을 맛볼 수 없을 테니.

 


흙을 밟으며 살다

저자
윤구병 지음
출판사
휴머니스트 | 2010-02-08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농부가 된 철학자 윤구병의 공동체 이야기!20여 가족 50여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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