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게으름
출근해서 9시간. 온전히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이다. 혹자는 “괴로우시겠어요. 한문, 정말 필요한 과목인데…….”라며 위로를 해준다. 그런데 나는 지금 이 시간이 아주 좋다. 왜 좋을까? 『흙을 밟으며 살다』의 한 구절로 대변한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에 깃을 펼친다. 지혜는 뛰기를 그만둔 순간부터 생긴다는 이야기다. 그리스의 문화는 게으름벵이들의 문화였고, 할 일 없이 건들건들 걷는 사람들의 문화였다. 부지런한 사람에게는 한가할 틈이 없다. 걱정하고 슬퍼할 틈이 없으니 좋지 않으냐고 이야기하지 마라. 생각할 틈도, 남과 이야기를 주고받을 틈도 없다는 말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 세상에 지혜를 가져다주고 빛을 가져다 준 사람 가운데에 누가 부지런했느냐? 누가 뛰면서 생각했느냐? 소크라테스는 맨발로 시장바닥을 빈들거리며 게으름뱅이들과 환담을 하면서 산 사람이고……>
올해만큼 책을 읽고 글을 쓸 날이 또 있을까? 교사라는 신분을 유지하는 동안은 없을 듯하다. 게으름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이 어중간한 1년. 참 좋다. 대학교수의 안식년이라는 것이 아마 이런 것이 아닐까? 다시 『흙을 밟으며 살다』의 한 구절.
<역사상에 게으른 민족이 남을 해치고 전쟁을 일으킨 예를 보았느냐? 양지쪽의 통 속에서 이를 잡고 있던 디오게네스와 세계를 정복할 야망에 불타 있던 알렉산드로스 중에서 누가 더 행복했고, 누가 더 착했으며, 누가 더 문화를 낳는 구실을 크게 했더냐? 착하고 성실하라고 하면서 부지런하라고 함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모순이냐? 부지런함이 미덕인 사회에서는 착함과 성실함은 이미 미덕이 아니다. 부지런함은 곧 생산성을 뜻하고, 생산성은 효율을 뜻하며, 효율은 경쟁이라는 자로 재어진다. 그런데 착함과 성실함은 경쟁과는 적대관계에 있는 협조라는 자로 재어지는 특성이다.>
윤구병 선생은 현직 농부다. 그의 탁견은 책 도처에서 불쑥불쑥 일어선다.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 농부가 똑똑치 못할 것이라는 편견을 접자. 건방지게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가는 농부에게 뺨을 맞을 것이다. 짜∼악! 끝내 그 농부가 윤구병 선생인줄도 모른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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