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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연작, 나무로부터 빌어온 단상

잡동사니

by 빈배93 2013. 3. 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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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 하나 바람이 그치질 않는다. 미풍이 불면 잎을 떨고, 거센 바람이 불면 가지를 떨고, 폭풍이 몰아치면 온몸으로 떤다. 바람이 어떠하건 나무는 저항하지 않는다. 보복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바람에게 굴복하여 동조하지도 않는다. 바람이 잦아들면 나무는 의연히 그 자리에 서 있다. 바람은 아무 일 없었다는듯 다시 찾아와 나무에게 말을 건다. 나무는 아무 말없이 바람을 맞는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나무는 생생함을 잃어버린다. 나무는 바람을 묵묵히 감내하며, 생명의 힘을 길러낸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서 나무의 수명이 다하는 때가 오면, 나무는 바람이 되고, 바람은 나무가 된다.

 

2

   지난 봄 벚나무는 앙상한 가지로 새하얀 꽃을 뿜어내었다. 꽃 지고 잎 무성한 염천炎天에 까맣게 잊고 있다가, 겨울이 되어 가지로만 남은 모습이 눈에 들었다. 한 점 꾸밈 없는 정직한 모습. 겨울은 한 점 꾸밈 없는 계절이다. 가지로만 남은 벚나무를 보며, 나를 규정한 모든 수식을 떨어낸 정직한 나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3

   어느 겨울 부석사 입구 사과밭에서 유홍준은 사과나무 가지의 역동성을 역도 선수와 비교하여 찬양했다. 지난 겨울 온천천 가에 늘어선 벚나무의 상처투성이 검고 두꺼운 줄기 속에서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사람은 사람이기에 자연 속에서 사람의 모습을 발견한다.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에 자연이든 비자연이든 모든 대상 속에서 사람의 모습을 발견한다.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는 사람은 그래서 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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