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시절, 제대하는 선임을 위해 돈을 모아서 반지를 해주었다. 길고 긴 세월이 흘러서, 제대 서열 2위가 되었을 때, 제대 서열 1위의 선임 왈. "애들 월급 얼마 된다고 그걸 걷어서 반지 꼭 해야겠냐? 나부터 그걸 없애려고 하는데, 어떠냐?" 심히 공감하였기에 흔쾌히 "그럽시다."고 동의했다. 그래서 내게는 제대 반지가 없다.
대학시절, 졸업하는 선배를 위해 돈을 모아서 반지를 해주었다. 꿈같던 대학 4년이 흐르고 드디어 내가 반지를 받게 되었을 때, 누군가가 하는 말. "후배들이 그 돈 왜 내야하느냐고 하더라. 치사하다. 받지 말자." 반지는 받지 못하고 그래도 서운하지 말라고 머그컵하고 무슨 열쇠고린가를 받긴 했지만, 그것들이 어떻게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내게는 졸업반지가 없다.
학교에 갓 부임했을 때, 10년 근속 교사에게 트로피와 금일봉이 나가고 있었다. 10년! 당시에는 멀고먼 미래의 이야기였다. 한 해 한 해 쌓여서 8년차가 되던 때였던가? 10년 근속교사에게 주던 트로피와 금일봉이 없어졌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문제는 아마 '돈이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현재 13년차 교사지만, 근속과 관련된 어떠한 증거물도 없다.
오늘자로 군인 연금 개혁안이 나온 모양이다. 더 내고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받는 것이 골자인 모양인데,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사립학교 교직원인 나 역시 더 내고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받거나 혹은 덜 받게 될 것은 거의 자명한 듯하다. 그럴 수밖에. 군 시절부터 지금까지 늘 그래왔으니, 별 수 있겠나.
이런 이야기를 남에게 하면 누구나 비슷한 경험을 한두 개씩 이야기 한다. 내 위에는 좋았는데, 나부터 어찌되었다는. 그런 세대를 흔히들 '끼인 세대'라고 한다. 그런데 끼인 세대는 어느 특정한 세대를 지칭하는 말은 아닌 듯하다. 태초에 있었던 아담과 하와를 제외하고는 끼인 세대가 아닌 세대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 때는 선배들을 얼마나 잘 모셨는데, 너희는 왜 그러냐?"라는 암묵적인 압력이 지금도 여전하다. 물론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본전 생각 안 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그런 압력을 당연시하며, 후배들에게 눈치를 주는 사람을 보면, "댁이 나한테 뭐 해준 것 있수? 본전 생각나면 은퇴한 선배 찾아가서 달라고 하시던지?"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 빌어먹을 관계가 관계인지라, 입을 꾹 다물고 만다.
사설이 길었다. 심리학적인 견지에서 말하자면, 국민들은 연금액수가 적아서 화가 나기보다는, 본인부터 수령액이 줄어들기 때문에 화가 난다. 각종 연금 개혁안들. 이미 혜택을 보는 사람부터, 곧 혜택을 볼 사람과 먼 미래에 혜택을 볼 사람에 대한 차등을 없애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그냥 어느 날부터 동시에, 살아있는 사람 모두를 대상으로, 일괄 똑같은 기준으로 지급하자는 말이다. 그러면 최소한 '끼인 세대'의 억울함은 없을 것인데. 불붙은 폭탄을 자꾸만 뒤로 미루는 것이 결코 능사는 아닌데, 그게 합리적이라고 우겨대는 것이 현 정부의 시책이 아닌가 싶다. 나는 늘 말하고 싶다. "10년 20년 먼저 직장을 가졌다고, 얼굴 한 번 본 적도 없는 선배인데, 왜 내가 그분들의 기득권을 보존해주기 위해, 세금을 더 내야 하는가요? 말마따나 우리 대승적 견지에서 모두 함께 고통을 분담하자구요." 에구, 이글 우리 선배들이 보면 뭐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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