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간은 안 하던 짓으로 규정되기보다는 하던 짓으로 규정된다. 그 짓은 언행과 비언행으로 구성된다. 어떤 자극에 대해 화를 내는 언행도 짓이요, 화를 내지 않는 언행도 짓이라는 말이다. 하루 8시간을 근무하고, 1시간을 운동하고, 3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는 짓은 나라는 인간을 대략 규정한다. 근무 시간 틈틈이 하는 독서, 무아지경 속에서의 운동, 밥을 먹지 않으려는 아이에 대한 협박은, 나라는 인간을 더욱 세밀하게 규정한다. 끝없이 세밀하게 묘사할 수 있는 나의 짓들은 나를 규정한다.
2 하던 짓을 안 하는 것이 안 하던 짓을 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의식주 하나하나가 다 그렇다. 그 짓의 선·악 여부도 별 문제가 되지 못하는 듯하다. 매일 하던 짓이 나와 세계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다행이겠으나, 그 반대의 경우면 곤란하다. 하던 짓을 안 하려 노력하는 것은 새 삶을 얻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는 결코 완성형이 있을 수 없는 진행형이다.
3 “안 하던 짓을 하면 죽을 때가 된 것이다.”라는 속된 말이 있다. 안 하던 짓을 하려면, 먼저, 하던 짓을 안 해야 한다. 하던 짓을 하지 않을 때, 과거의 나는 완전히 소멸된다. 그리고 나는 완전히 새로운 인간으로 규정된다. “안 하던 짓”운운하는 저 속된 말은 육체적으로는 진위가 불분명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진실에 가깝다.
4 이런 영화가 있다. ‘아침이 된다. 주인공이 일어난다. 어제와 완벽하게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주인공이 무슨 짓을 해도, 어제가 반복된다. 온갖 악행을 일삼아도 반복되고, 무결점의 하루를 보내도 반복된다. 어느 아침, 주인공은 온갖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기로 결심한다. 실행에 옮기고 성공한다. 다시 찾아온 아침은 어제의 아침이 아니었다.’ 이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의미 없는 하루의 반복은 100년을 살아도 하루의 반복일 뿐이라는. 구원은 이타적인 행위에서 비롯된다는. 하던 짓을 그만 두어야 한다. 안 하던 짓을 해야 한다. 영화가 전달한 추상적 메시지가 실체가 있는 메시지가 되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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