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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산업은 어떻게 부모들을 괴롭히는가?

잡동사니

by 빈배93 2013. 6. 1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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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적으로도 유별나다할 대한민국의 교육열은 교육을 거대한 산업으로 만들어놓았다. 더 이상 커질 수 없는 교육열은 연령대를 아래로 아래로 내려 이제는 뱃속의 태아까지 점령해버렸다. 육아 전문 프로그램과 육아서가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온다. 교육산업의 형제쯤 되는 육아 산업은 한 번은 초보일 수밖에 없는 엄마들을 어르고 달래며 그 세를 급속히 확장하고 있다. 그 덕에 대한민국 GDP의 규모가 늘어나고, 고용이 촉진되었으며, 전세계적으로도 가장 훌륭한 축에 드는 육아 메커니즘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제는 과거로 돌아가려고 해도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육아 전문 프로그램과 육아서로 대표되는 이 땅의 육아 산업은 분명 이 땅의 초보 엄마들에게 지식과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찬양 받을지어다. 육아 산업이여! 그러나 그게 다 일까? 세상사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 법. 그 음지에 대한 비판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이끄는 것 또한 당연하거늘, 유독 육아 산업에 있어서만은 비판이 비켜간 듯한 것은 무슨 연유인가? 이는 부모들의 공포와 죄책감을 야기하는 육아 산업계의 의도적, 비의도적 술수 때문이다.

 

   육아는 이 땅의 부모라면 누구나 하는 것이지만, 아이들이 다 크고 나면 쉽게 잊어버리는 것이다. 아이를 대여섯 낳아 기른 부모도 예외는 없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풍토가 과거의 육아 방식을 거의 소용없는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이는 단연코! 잘못된 생각이다) 쉴 새 없이 변하는 세상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데는 개별의 부모가 육아 산업계를 당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게 잘못되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한다고 아이 키우는 근본적인 지침들이 바뀔 수는 없다. 육아 산업도 그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근본적인 지침에 ‘급변하는 세상’을 더해서, 누구나 초보일 수밖에 없는 엄마들에게 공포를 심는다.(이때 아이 키우는 근본적인 지침은 무시되거나 왜소한 것이 된다.) ‘너희들이 우리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지 않는다면, 이 요상한 시절 괴상한 나라에서, 너희 아이들은 비정상적이고 이상한 아이가 될 것이라.’고 협박한다. 물론 대놓고 그러지는 않는다. 그들은 서툰 장사꾼이 아니니까. 그들이 사용하는 방법은 어디까지나 암시일 뿐이다. 게다가 프로이드니 융을 들먹이며,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가 평생을 두고 여러 가지 변형된 형태로 심리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엄청난 협박에 겁먹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협박에 굴한 부모는 기꺼이 월급의 대부분을 내어놓을 태세가 된다. 번창할지어다. 육아 산업이여! 공포가 지배하는 세상에 비판이 어찌 숨을 쉴 수 있겠는가? 그것이 육아 산업에 대한 비판이 잠잠한 첫 번째 이유다.

 

   육아 프로그램이나 육아서를 읽는 부모는 누구나 죄인이 된다. 아이들을 일관성 있는 태도로 양육해야 한다는 내용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부모가 얼마나 될까? 아이들과 놀아주지 말고 놀아야 된다는 내용을 진정으로 실천하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아이에게 고함지르지 말고 조분조분 설명해야한다는 내용을 일관성 있게 실천하는 부모는 얼마나 될까? 앞서 말한 세 가지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지만, 지극히 실천하기 어려운 것들이자, 100%로 그러해야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나머지 내용들도 별반 다를 바 없다. 그것들은 누구나 해야 하지만 지극히 힘든 것들임에도, 계속 당신 부부는 그렇지 못하다고 훈계를 해대니, 죄인이 될 밖에. 그러나 육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전문가도 육아서의 저자도 그러기는 쉽지 않고, 설사 실천으로 옮겼다고 해서 그네들의 아이들이 훌륭하게 성장했다는 보고도 없다. 단지 명백히 확인 되는 사실은 지난 십 수 년간 육아 산업이 몇 배 이상 성장했다는 보고뿐이다.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 비판하기는 어렵다. 이것이 육아 산업에 대한 비판이 잠잠한 두 번째 이유다.(육아 산업계의 근본적인 자기비판은 기대하기 어렵다. 왜? 제 살 뜯어먹는 짓을 왜 하겠는가? 어찌되었던 거룩하고 신성해야 장사가 되는데.)

 

   세사世事에 대한 평가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다. 따라서 세사에 대한 이러저러한 지침 역시 어디까지나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다. 세상에 어디에도 통용되는 완벽한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완벽한 사기詐欺이거나 압도적인 강압强壓일 뿐이다. 육아 프로그램과 육아서는 어디까지나 보통 부모들의 명백하고도 커다란 과오를 수정하는 선에서 참조되어야 할 뿐이지, 그것이 만능의 지침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것저것 혼란스러운 부모여! 가장 간단한 해결책은 이것이다. 육아 프로그램과 육아서를 끊어라! 당신은 죄인이 아니다. 당신의 아이가 이상한 아이가 아니다. 좀 이상해도 괜찮다. 에디슨도 그랬고, 링컨도 그랬고, 당신도 좀 이상했다. 성인이 된 당신도 좀 이상하고, 당신 주변의 사람들도 다들 좀 이상하다. 그래도 잘 살지 않는가? 그럼 됐다. 그래도 불안하다면, 육아서 대신 고전을 읽으라.『어린 왕자』도 좋고『나의 라임오렌지나무』도 좋고『호밀밭의 파수꾼』도 좋고『수레바퀴 아래서』도 괜찮다. 수많은 육아 프로그램과 육아서의 유효기간이 10년 이쪽저쪽이라면, 앞서 말한 고전들은 이미 그 수 배, 수십 배의 기간 동안 세상을 부모에게 가르침을 주어왔고, 여전히 멀쩡히 살아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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