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 씨가 지하철을 탔다. 빈 자리가 보여 앉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스마트폰 중독자들 뿐이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책을 꺼내어 들고 읽으려는데, 감사안해 부인이 서너 살 된 딸아이를 데리고 지하철을 탔다. 친절 씨는 집에 있는 딸아이가 생각나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가야, 앉아라.」 아이는 혼자 앉기가 싫어서, 엄마보고 먼저 앉으라 하고, 무릎에 올라앉았다. 친절 씨는 자리를 양보하고도 기분이 거시기하였다. <아니, 인사받으려고 양보한 건 아니지만, 고맙다는 말 정도는 하는 게 예의잖아.><아니지, 인사할 타이밍을 놓친 거겠지.> 친절 씨는 그런 생각을 하고, 선체로 책을 읽었다. 잠시 후 친절 씨의 눈에는 잠든 모녀의 모습이 들어왔다. 지하철은 나온 친절 씨는 <다음에도 그런 상황이면 당연히 자리를 양보해야지. 하지만 오늘 그 부인이 또 내 앞에 선다면 양보 안 하고 싶어.>라는 생각을 했다.
감사안해 부인이 딸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왔다. 남편 바빠 씨가 막 청소를 끝내고, 설거지를 하려는 참이었다. 바빠 씨는 평소 퇴근이 늦어 집안 일을 거의 도와주지 못했는데, 마침 이른 퇴근으로 두 손을 걷어붙인 것이었다. 감사안해 부인이 남편에게 말했다.「설거지 끝내고, 화장실 청소도 부탁해.」 바빠 씨는 <설거지 마치고 좀 쉴려고 했는데…….>라고 혼자 조용히 웅얼거렸다. 화장실 청소까지 마치고 나온 바빠 씨. 리모컨을 잡고 TV를 틀었는데, 감사안해 부인이 「아니, 모처럼 일찍 왔으면 애하고 놀아줘야지, 무슨 TV야.」 남편은 목구멍까지 치밀어오른 말을 주어 삼키고 딸아이와 놀았다. 부엌에서 감사안해 부인이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날 도와 주는 놈이 어째 하나도 없어!」 바빠 씨는 딸아이와 놀면서 마음으로만 조용히 다짐했다. <내 다시 일찍 퇴근하나 봐라. 그렇게 열심히 해도, 고맙다는 말은 커녕, 저렇게 투덜거리기만 하니…….」
우연이지만 친절 씨와 바빠 씨는 직장 동료였다. 다음 날. 휴게실에 나란히 앉은 친절 씨와 바빠 씨. 친절 씨가 어제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을 말했다. 바빠 씨는 집에서 있었던 일을 말했다. 두 사람이 「맞다」며 과하게 공감한 것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도와주기 싫다>는 것이었다. 감사안해 부인은 오늘도 투덜거렸다. 「세상에 나를 도와 주는 놈은 하나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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