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언수 씨는 부산 하고도 사하구 하고도 감천에 있는 화력발전소 앞에 있는 중국집 짜장면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다는 사람이야. 감천에서 학교 선생질을 하고 있는 나는 우연히, 그러니까 심심해서 순전히 우연히 『설계자들』을 읽었지. 재미있더라. 그럼에도 일단 주인공이 킬러(killer)니까 어지간한 솜씨만 있으면 재미가 없을 수 없겠다고 생각함으로써 작가의 역량을 한 번 의심해 봤어. 솔직히 말해 그래도 시집 한 권 정도 내본 아마추어 글쟁이로서 질투가 좀 났거든. 암튼 다 읽고 나서 김언수가 쓴 다른 소설을 찾았어. 단편은 일단 제쳐두고, 장편을. 한 권이 더 있더라. 『캐비닛』! 문학동네 소설상을 받은 거였어. 천명관의『고래』를 읽은 적이 있었어.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았다는 기억과,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던 게 생각났지. 그러니 망설일 게 뭐 있었어. 읽었지. 스무 페이지 정도 읽고 나니 손에서 놓을 수가 없더라.
공덕근이라는 남자가 있었어. 정말 별 볼 일 없는 공기업에 근무하는 정말 별 볼 일 없는 행정직원이야. 그래도 공씨는『캐비닛』의 떳떳한 주인공이야. 아무튼 공 씨는 주인공임에도 소설 속에서 이름이 몇 번 나오질 않아. 하여튼 이 공씨가 하도 심심해서 13호 캐비닛을 열어보게 되는데 거기에는 해괴망칙한 인간들에 대한 보고서가 있더래. 하도 어이가 없는 내용이라 읽을 이유가 없었는데, 하도 심심해서 다 읽게 되지. 얼마 후 그 문서들의 주인공인 권 박사도 만나고. 여차저차해서 권 박사의 조수 비슷한 것이 되었고, 공박사가 죽고 난 뒤에는 납치되었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어느 섬에 짱박히게 되면서 소설은 끝이 나.
이 소설에 나오는 괴상한 인물들, 그러니까 자고 나면 2,3년 쯤 우습게 흘러가는 사람이라던지, 손가락에 은행나무가 자라는 사람이라던지, 도플갱어가 깽판치고 다녀서 골치 아픈 사람이라던지, 쇳덩이를 먹는 사람 같은 괴상한 사람이 현대인의 비극적인 자화상이라는 것 정도는 감을 잡을 수 있어. 작가가 최종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게 "잘 생각해봐! 이 책을 읽는 너도 기존의 인류와는 다른 변종이 아닌지를." 쯤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김언수라는 소설가는 글 쓰는 것을 무지하게 좋아하는 자질에다가 지독하게 가난하고 대책 없는 삶을 견딜만한 인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 김언수, 김영하, 성석제, 공지영…… 최소한 나이 마흔이 넘었으니 결코 젊지 않지만 어쨌든 '젊은 소설가'라 불리는 이 사람들의 책을 읽고 나면 '나도 소설 한 번 써 봐?'하는 생각을 접게 되는 것 같아. '그래, 재미있게 읽어나 주지 뭐. 심심한 사람 있으면 한 번 읽어봐라고 말도 해주고. 그럼 된 거지.' 하는 마음이 드는 건, 순전히 저 사람들이 너무 잘났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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