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께서는 올해로 일흔 한 살이시다. 손자, 손녀를 돌보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매일 우리 집으로 출근을 하신다. 퇴근을 해서 현관을 들어 설 때마다 아버지께서는 책을 읽고 계시거나 책을 베끼고 계신다.
아버지는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사셨다. 어려서 공부를 곧잘 하셨다고 한다. 국민학교 때는 급장을 도맡아 하셨고, 부산의 명문 중 하나였던 동래중학교를 졸업하셨다. 부산 공업고등학교에 합격을 하시고도, 아래로 늘어선 동생들 때문에 무슨 야간고등학교를 갈 수 밖에 없으셨다고 한다.(17살인가부터 양복을 만드는 일을 배우셨고, 그게 평생의 직업이 되었다.) 나이 일흔 하나에 여전히 책을 읽고 베끼시는 것이, 그 때 미처 하지 못한 공부에 대한 아쉬움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책 읽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피를 갖고 계신 것은 분명하다.
저번 주던가. 4살 된 아들 민민이가 내 책(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였다.)을 집어 들더니, 첫 페이지의 두 줄을 한 자 한 자 또록또록 읽어 내려갔다. 단 두 줄이었지만 깜짝 놀라기에 충분하였다. 다음 날 알아보니 민민이보다 더 빨리 글을 깨치는 아이들도 있기는 하지만, 굉장히 빨리 글을 깨우친 것은 맞다고 한다.(뭘 가르쳐 본 적은 없고, 그저 제 책을 읽어준 것이 다여서 신기할 뿐이다.)
지난 달 내가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 결산을 해보았다. 책 13권에 단편소설 10편. 물론 독후감도 다 썼다. 이렇게 많이 읽고 쓰기는 처음이다. 심지어 블로그 바탕화면에 내 글이 도배가 되어 있다.(도배가 되었다고 글의 질이 보증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구체화되면서 일어난 변화다.
|2011년 10월 4일 현재 블로그 바탕화면|이게 뭐다냐?
최근 내 글과 글쓰기에 대한 회의가 짙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조금은 버겁다. 하지만, 아버지로부터 나를 거쳐 내 아들에게로 면면히 이어지는 피! 책을 사랑하고 글을 좋아하는 피! 그 피가 내게 흐르고 있다. (안 흐른다면 할 수 없고.ㅋ.)
어제부터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베껴 쓰고 있다. 끝까지 가볼 생각이다. 사실 이런 미친(?) 짓은 이전에도 해 본 적이 있다. 『백범일지』를 처음부터 끝가지 워드프로세서로 쳤었으니. 다르다면 이번에는 직접 내 손에 연필을 잡고 쓴다는 것일 뿐. 연필을 잡아본 게 언제던가? 2시간 정도를 쓰다보니, 연필과 닿는 손가락이 아프다. 하지만 그러고 있으니, 아버지로부터 이어진 그 피가 더 분명하게 느껴진다. 아버지! 오래 오래 더 많이 읽으시고 더 많이 베끼세요. 저도 그리 하렵니다. 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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