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인류의 위대한 스승, 마하트마 간디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간디]

잡동사니

by 빈배93 2012. 5. 15. 06:00

본문

 

   대한 영화를 보았다. 리처드 아텐버로우가 감독한 간디. 19894월에 개봉한 영화로, 킹 벤슬리가 간디 역을 맡았다. 나는 올레TV를 통해서 봤다. 대영제국의 압제에 맞선 간디. 민족의 공존공생을 위해서 기꺼이 죽음을 감수한 간디. 그의 20대 변호사 시절부터 1948년 암살을 당하는 70대까지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다. 러닝타임은 189분이고, 수작이라 평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역시나 검색을 해보니 각종 상들을 휩쓸었다.

 

   간디의 앞에 붙는 마하트마란 말은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그 마하트마란 말이 간디에게 얼마나 당연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영국 속담에 인도를 내주어도 셰익스피어만은 안 된다.”라는 말이 있다. 세익스피어에 대한 영국인의 사랑과 존경을 담은 말이다. 예전에는 멋진 말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난 지금의 내 생각은 달라졌다, ‘인도의 간디 혹은 간디의 인도가 어찌 셰익스피어 따위와 비교될 수 있단 말인가? 대영제국을 다 내주어도 간디만은 안 된다라고 해야지.’

 

   간디하면 무저항 비폭력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런데 그 앞에 생략된 말이 있다. 온전하게 말하자면, ‘할 말은 다하면서, 불의에는 절대 협조하지 않는, 무저항 비폭력이다. 그게 무슨 힘이 있을까 싶지만, 그게 아니었다. 영화 속에 비치는 영국인의 모습은 한없이 초라했다. 힘없이 당하는 인도인보다, 눈이 뒤집혀서 총을 쏘고 몽둥이를 휘두르는 대영제국의 신민들이 더 불쌍하고 가여웠다. 피의자로 선 간디보다 그를 재판하는 재판관이 더 초라하고 슬퍼보였다. 그것이 바로 무저항 비폭력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무저항 비폭력이 가지는 장점에 대해서 일전에 길들이기와 편 가르기를 넘어에서 본 것 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무저항 비폭력이기 때문에 구속 기간이 길지 않아서, 다시 시위를 할 수 있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하물며 세계 2위의 인구를 자랑하는 인도이니…….

 

   간디의 노력으로 인도는 독립을 맞는다. 그러나 종교적 갈등으로 내전이 일어난다. 힌두교와 무슬림 간의 갈등. 인도인들은 서로를 증오하고, 서로를 죽인다. 간디는 단식을 시작한다. 간디의 단식에 수억을 헤아리는 인도인들은 싸움을 멈춘다. 무슬림에게 자식을 잃은 힌두교를 가진 아버지가 칼을 내리고 죽어가는 간디 앞에서 통곡을 한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무슬림은 파키스탄으로 독립을 하고 간디는 힌두교 과격분자에게 암살을 당한다. 향년 78.

 

   간디를 두고 성인聖人이라고 말해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듯하다. 간디를 성인으로 만든 것이 대영제국의 압제였다면, 간디를 고인으로 만든 것이 같은 인도인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그러나 그도 사람이었다. 영화 속에서 잠시 나오는 아내와의 다툼, 아내의 죽음에 서럽게 흘리던 눈물. 성인聖人의 마음속에는 강철이 아닌 따뜻한 인정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런 성인과 동시대를 헤쳐 왔던 사람이 아직도 살아 있는 나라. 인도예사롭게 봐지지가 않는다.

 

   간디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돌리던 물레가 또렷하다. 그 물레는 영국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었고, 노동의 신성함을 보여준 것이었다. 영화가 상영되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동안 간디는 옷이라 부르기 어려운 천 조각을 걸친 채, 부축을 받으며 걸었다. 그가 바로 대영제국을 초라하게 만든 거인. 벌거벗은 간디다.

 

   ‘네루가 간디의 든든한 지원자이자 후계자란 사실과, 간디 역을 맡았던 킹 벤슬 리가 영국 사람이라는 점도 기억에 남는다. 간디의 위인전을 읽어야겠다. 다른 위인전도 읽어야겠다. 그런데, 내가 단식을 하면 몇 사람이나 마음을 고쳐먹을까?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