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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폰의 유혹을 어찌 할까?

잡동사니

by 빈배93 2012. 6. 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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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 있는 컴퓨터를 없앴다. 퓨터에 잡혀 사는 것이 싫었다. 집사람의 잔소리도 한 몫 했다. 주말에는 블로그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쉽긴 했다. 최근 집사람이 스마트 폰을 샀다. 이제는 주말에도 집사람의 폰으로 블로그를 볼 수 있어서 좋다. 스마트 폰에는 부러운 기능이 있다. 800만 화소의 사진 촬영 기능과 그 사진을 메일로 전송하는 기능. 갈등했다. 나도 사버려……. 도보 여행 어플도 탐이 난다. 얼마를 걸었는지, 어떤 길로 걸어왔는지, 몇 시간을 걸었는지, 다 알 수 있다. 그러면 도보 여행이 더 재미있을 텐데. 그럼에도 나는 스마트 폰을 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일주일에 서너 번 지하철을 타고 퇴근한다. 전철 안에 거의 모든 승객이 스마트 폰질을 하고 있다. 예외는 거의 없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보자니, 자꾸만 노예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스마트 폰을 사용하는 것은 그들의 선택에 의한 것일까? 아니다. 지하철 안의 무료한 시간과 스마트 폰의 중독성이 합작한 인간의 노예화! 나는 그렇게 본다. 손에 책을 들고 있는 나는 졸지에 이상한 인간이 된다. 나 역시 손에 스마트 폰을 들고 있다면,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그 좋은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 정도는 기꺼이 포기해야 한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퇴근하면 5살 된 큰 아들놈이 제 삼촌이 퇴근하고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삼촌의 스마트 폰에 있는 오락을 하기 위해서다. 아들 놈의 손에 폰을 쥐어지면, 어디에 있는지 찾아야할 정도가 된다. 제 삼촌이 우리 집에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식사시간 1시간. 그래서 그냥 놓아둔다. 대신 집사람의 폰은 어떤 경우에도 가방 깊숙이 넣어두고 꺼내지 않는다. 큰 아들놈은 엄마에게는 스마트 폰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

 

   교육청에서 스마트폰을 교육에 활용하는 연수가 있다고 홍보를 하고 있다. 문명의 이기를 잘 사용하면 물론 좋을 것이다. 그러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다음 말을 심각하게 고려해야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의 과학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해서 경이로운 도구들을 보유하고 있었을 때도 그들의 영혼은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었어요. 그래서 결국은 영혼의 수준에 맞는 과학 기술의 단계로 돌아갔습니다. 초보적인 영혼들에게는 초보적인 기술이 어울리죠.(1, 121.)

 

   하나만 묻자. 당신 영혼의 수준이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사용할만한 수준인가? 만일 당신의 영혼이 스마트 폰이라는 경이로운 도구를 보유할 수준이 못된다면, 당신은 스마트 폰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 폰에게 이용당하는 것이다스마트 폰의 노예!  영혼의 수준을 올리는 데는 독서가 최고다. 가정에서의 독서를 방해하는 텔레비전과 그 외의 모든 공간에서 독서를 방해하는 스마트 폰의 조합! 완벽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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