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험기간이다. 감독을 하며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우두커니 보았다. 문득 시계가 되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계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니, 참 재미있었다. 그 재미를 나누고자 글을 썼다.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다른 사물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유익하다고 믿고 있다.
나는 교실에 걸려있는 벽시계야. 주로 태극기 옆에 걸려 있지. 위치상 동격이란 말이지. 너희들(학생) 입장에서 보면, 내가 태극기보다 더 우위일거야. 너희들이 훨씬 자주 보면서 기뻐하고 슬퍼하잖아! 게다가 태극기는 변화가 없잖아? 하지만 난 생동감이 넘치지, 아무렇게나 움직이지 않고 규칙적으로 움직이니 너희들이 불안해할 필요도 없고.
날 사서 걸어놓은 것은 너희들이지만, 너희들이 내 주인은 아니야. 왜냐고? 너희들은 내 팔이 가리키는대로 움직이잖아. 그러니 내가 너희들의 주인인 셈이지. '주객전도主客轉倒'라는 말. 우리의 관계를 정말 적절하게 표현하는 말이지 않아? 게다가 나는 주인으로서 갖추어야 될 덕성도 충분해. 아주 조금만 먹고도 내가 할 일을 정확히 수행하지, 흥분해서 빨리가거나 늦게 가지도 않지, 하루 24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내 임무를 잊지 않지, 잔소리 하지 않고 묵묵히 지켜봐주지……. 그 밖에도 많지만 더 말하면 자랑이 될 것 같아서 그만 말할께. 하지만 이 정도면 내 훌륭한 덕성에 대해 동의할 수 있지?
가끔 너희들이 날 5분 일찍 가게 맞춰두잖아. 어리숙한 선생님들은 그런 날 믿고, 너희들의 간계에 속아넘어가지. 내 임무에 차질이 생긴 것은 분명하지만, 사실 나도 그게 재미있기는 해. 늘 그러면 안 되겠지만 가끔씩 그러는 건 이해해줄 수 있어. 나도 한 번씩은 일탈의 즐거움을 느끼고 싶거든. <이미지 출처: 다음 이미지>
수업 시작할 때면 너희들은 나에게 너무 무관심해. 너희들도 알겠지만, 무관심은 미움보다 싫단 말이야. 하지만 수업이 마칠 때 쯤이면 나는 행복해져. 너희들 모두가 꼭 한 번 이상을 나를 봐주잖아. 선생님들도 그렇고. 어떤 학생은 아예 눈을 때지를 않아. 그럴 때는 민망해. 한 번 생각해 봐. 누군가가 너희들을 빤히 계속 쳐다본다면 어떻겠니? 어쨌든 관심을 받는 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야.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너희들과 함께 하는 것이 나는 좋아. 많은 사람들이 너희들이 너무 힘들고 불쌍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좋아. 외로운 건 싫거든. 적어도 나는 전 세계의 교실에 걸려 있는 벽시계 중에서 가장 행복한 놈이야. 너희들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말이야. 너희들이 떠나고 난 빈교실에서 난 지금도 똑딱거리며 내 임무를 수행하고 있어. 그리고 내일 아침을 기다리지. 내일 아침 나의 교실에서는 또 무슨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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